서울에 있는 91개 동(洞) 주민자치위원회에 올해 처음으로 최대 3000만원씩의 예산이 배정된다. 주민들은 동네에서 필요한 정책을 직접 세워 현안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명칭이 ‘서울형 주민자치회’로 바뀌고, 동(洞) 행정 권한도 일부 위탁받아 행사한다. ‘생활 속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위원회의 전문성과 대표성 확보가 만만치 않아 자칫 행정의 정치화를 부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예산 11억여원 첫 배정…행정권도 행사

洞 주민자치委에 예산·행정권 쥐어준 서울시
서울시는 서울형 주민자치회를 올해 17개 구 91개 동에서 시행한다고 28일 밝혔다. 지난해 성동·성북·도봉·금천구 등 4개 자치구 26개 동에서 시범 운영하다 본격 시행을 결정했다. 2021년까지는 424개 모든 동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전신인 주민자치위원회는 각 동의 자치회관 운영을 위해 1999년 설립된 기구다. 지금까지는 실질적 권한은 없고 월례 회의 참여나 자치회관 프로그램 선정을 자문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서울형 주민자치회에는 올해 11억5000만원의 예산이 지원된다. 지난해 시범 운영한 26개 동에는 3000만원씩, 올해 처음 시행하는 65개 동에는 580여만원씩 배정된다. 주민자치회는 주민 투표로 안건을 의결한다. 주민자치회에서 주택가 환경 개선을 위해 벽화를 그리자는 안건이 나오면 최고 의결 기구인 주민총회에 부쳐 결정하는 식이다. 이후 시에서 받은 예산으로 해당 자치구나 주민자치회가 사업을 집행하는 구조다. 벽화 그리기 외에도 동네 공원 가꾸기, 마을 공방 운영, 공공시설 개·보수 등 동네 문제 해결사업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동 행정 권한의 위임도 가능하다. 주민센터가 하는 행정 업무를 주민자치회가 맡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자치회관 운영, 평생교육 시설 운영, 주택가 쓰레기 수거 등의 업무를 주민자치회로 넘길 수 있다.

◆“전문성 우려…골목의 정치화 부를 것”

서울시는 ‘민주주의 실험’이라는 시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자치회가 지역사회에 빠르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자치구와 동에 민간 전문인력을 파견하고, 자치회 행정을 담당하는 간사의 활동비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위원회 구성과 운영방식 등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주민자치회 위원들의 역량 문제다. 지원자 중 공개 추첨으로 동마다 50명 안팎의 위원을 뽑는다. 주민 외에 그 동네에서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도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무작위 선발이라 전문성이 부족한 위원이 다수 뽑힐 개연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2014년 펴낸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모니터링 및 성과분석’ 보고서도 “위원들의 자질과 역량이 부족하고, 생업 탓에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등 활동에도 소극적”이라고 적고 있다.

운영 절차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는 주민총회는 주민 1%만 참석하면 유효하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주민 100명 중 1명이 참여하는 총회가 대표성을 지닐 수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골목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 행정전문가는 “생업에 바쁜 일반 주민들은 현실적으로 참여가 어려운 만큼 특정한 의도를 가진 집단에 의해 동네 행정이 좌우될 수 있다”며 “악용될 경우 정치 전위대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