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공무원이 규제완화에 동참케 해야
한국GM 사태에 대해 “우리 부처 소관이 아니다”며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가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는 보도다. 미국 GM본사는 우리의 올해 6·1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결정한 뒤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GM은 이미 2~3년 전부터 호주와 동유럽권 공장에만 신차 배정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그때부터 마음이 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와 같은 그린필드 투자에서 신차 투자를 멈췄다는 것은 시한부 사형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다. 일찍부터 대책을 논의했어야 하는데 정부는 군산공장 폐쇄 공표 바로 전날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업무 경험을 돌이켜 보면 구조조정은 워낙 민감한 사안인지라 쉽게 결정하기 어렵고 책임도 꼭 따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홀로 결정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규제 완화도 비슷한 유형의 이슈다. 규제 완화는 꼭 필요하지만 완화 혜택을 받는 사람과 완화로 인해 기득권을 잃는 사람 간의 보이지 않는 대립이 내재돼 있다. 한 달 전쯤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규제 혁신 토론회’가 열렸고, 신기술·신산업 분야의 규제 혁파를 위해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원칙 허용, 예외 금지)에서 더 나아가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방식(우선 허용, 필요시 사후 규제)으로 전환키로 했다. 진짜 혁신적인 발상이었고 세부 추진 방안도 곁들여졌다.

특정 신기술·신산업이 제외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념 정의를 포괄적으로 하기로 했으며, 신제품 등이 분류체계에서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혁신 카테고리를 유연하게 설정하고 평가·관리 방식도 사전심의·검사에서 자율심의 방식의 사후평가로 전환한다고 했다. 또 신사업 시도가 가능하도록 기존 규제를 탄력 적용하는 ‘규제 샌드박스’ 같은 혁신적인 제도도 포함됐다. 이대로 된다면 ‘불합리한 규제’란 말이 사라질 것 같다. 문제는 우리의 행정 생태계에서 담당 공무원이 감사와 책임을 의식하지 않고 이를 처리할 수 있느냐다.

지난 20일 감사원도 신산업 13가지에 대해서는 감사를 자제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무원 사회에 해당 산업에 대해 행정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읽힌다. 4차 산업혁명 분야를 적극 육성하겠다는 현 정부 방침과 궤를 같이하는 정책으로 발 빠른 규제 혁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지만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일을 하도록 하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비공개로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서별관회의’라는 명칭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국가를 경영하려면 이런 논의구조는 반드시 필요하다. 구조조정 같은 사안에는 공개적으로 할 수 없는 얘기들이 있으며, 등을 떠밀더라도 그런 어려움을 이해해 주면서 떠밀어야 일이 추진된다. 무책임성 논란 때문에 서별관회의가 폐지됐지만 일을 책임 있게 하도록 시키려면 필요한 제도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구조조정 자금을 정부 재정으로 감당해왔는데 외환위기 과정에 구조조정 규모가 커지면서 채권단까지 합세해야 대응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시장에서 얻어 쓴 시장성 부채가 많기 때문에 채권단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거대 이슈를 부처 간 긴밀한 협의 없이 어떻게 대응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둘째, 감사원에서 13개 신산업 분야에 대해서는 감사를 자제하겠다고 하지만 이것만으로 공무원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법에서 엄연히 규제하는 사항을 일단 허용한 다음, 필요시 사후에 검토할 공무원은 없을 것이다. 요즘은 할 일을 게을리하거나 자유재량을 그릇되게 판단해도 처벌을 받는다. 만약 법령에 어긋난 처리에 대해 감사원에서 감사를 면해주더라도 기득권자가 진정이나 소송을 제기하면 담당 공무원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또 법령에 어긋나는 행정처분을 눈감아 주기 시작하면 자의적 행정과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만연한다.

행정이 예측 가능성을 잃으면 사회적 손실이 더 커지므로 원칙에 부합된 규제 완화가 요망된다. 신산업 분야도 13개로 국한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으므로 자주 개정해서 공고하고, 아무리 급하더라도 법을 개정해 공무원이 떳떳하게 규제 완화에 동참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