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당정협의를 열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근절대책을 내놨다. 기술 탈취 혐의를 받는 대기업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제도를 도입하고, 배상액도 손해액의 최대 10배 이내로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 대책이 기술 탈취를 근절하고 중소기업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대기업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다른 기업이 이룬 기술혁신의 결실을 가로챘다면 법에 따라 마땅히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모든 대기업을 ‘잠재적인 중소기업 기술탈취 범죄자’로 간주하는 식의 대책이 가져올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자칫 대·중소기업 간 기술협력이나 협업 등 정상적인 기업활동까지 위축시킨다면 중소기업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대·중소기업 관계를 기술을 뺏고 빼앗기는 ‘적대적 착취 관계’가 아니라 기술을 사고파는 ‘상생적 윈·윈 관계’로 인식한다면 징벌이 아닌, 시장친화적 해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기술거래 시장이 그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인수합병(M&A)과 함께 기술거래 시장이 활성화되면 기술 탈취라는 범죄행위가 설 땅은 그만큼 좁아진다. 중소기업으로서도 기술혁신 등 기울여온 노력에 대해 법이 아닌, 시장을 통해 보다 합리적인 보상을 기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는 정부가 강조하는 동반성장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스타트업·벤처 등은 대기업의 인수나 기술 구매를 원한다. 하지만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함께 규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대기업의 스타트업·벤처 인수는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라고 했지만, M&A나 기술거래를 위축시키는 기업집단 규제는 그대로다. 과거 정부에서 기술거래소 설립 등을 시도했지만 시장 형성에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밖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손을 잡고 개방형 혁신생태계로 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부상하고 있는 플랫폼 경제도 기술의 공개·공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혁신성장을 외치는 정부가 기술 탈취 문제를 징벌이 아니라 기술거래와 협력으로 푸는 방법은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