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자료 확보하려면 금융상품 수준 법·제도 정비 필요해
거래내용과 주민등록번호도 연계해야…'제도권 편입'은 부담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 논의에 착수한 지 한 달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뚜렷한 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래 규모만 월 수십조 원에 달하는 가상화폐 과세를 위해서는 사실상 금융상품 수준으로 개별 거래 내역을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 가상화폐를 제도권 상품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류가 강하다 보니 과세를 위해 필요한 법·제도 개선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상화폐 과세 딜레마…세금 매기려니 제도권 편입 '부담'
28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 소득세 과세를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소득세법을 개정해 가상화폐 거래 차익 등을 과세 대상으로 열거하더라도 당장 과세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난제 중 하나가 소득세 과세를 위한 개별 거래 내역 확보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에 따라 거래소가 개별 거래내역을 구분해 관리하도록 의무화했지만 이를 바로 과세자료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 과세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선 거래 실명화가 이뤄져도 거래소에 기록되는 개별 거래 내역은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하지 않고 있어 과세자료로서 한계가 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개별 과세는 주민등록번호나 사업자등록번호를 기준으로 이뤄진다"며 "가상화폐 거래 내역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없기 때문에 거래소 기록만으로 과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거래소가 은행 실명 계좌와 연결이 되기 때문에 거래소의 기록과 은행 계좌 정보를 모두 활용할 수 있다면 과세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기관인 은행과 달리 가상화폐 거래소는 과세 목적으로 거래 내역을 정부에 제출할 의무가 없다.

'과세자료의 제출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과세자료 제출 의무가 있는 기관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는데 금융회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법정단체나 공공기관들이다.

정부가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마찬가지 논리로 가상화폐 거래소 역시 금융기관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거래소는 자료 제출 의무가 없다.

결국 개별 소득세 과세를 위해 거래소의 거래 내역을 확보하려면 가상화폐 거래소를 과세자료 제출 의무가 있는 금융기관으로 해석하거나, 법을 개정해 가상화폐 거래소를 자료 제출 기관에 추가해야 한다.

다만 이런 법·제도 개정 움직임이 시장에서 '가상화폐의 제도권 편입 수순'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정부로서는 작지 않은 부담이다.

정부 내에서 가상화폐 거래는 블록체인 기술과 별개로 득보다 실이 큰 '투기'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이런 분위기에서 가상화폐 거래소에 다른 법정기관 수준의 협력 의무를 부여하고 정상적인 과세를 추진하는 것은 정부로서는 머쓱한 일일 수 있다.

특히 정부가 '거래소 폐쇄'까지도 여러 안 중 하나로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가상화폐 거래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듯한 움직임은 또다시 '정부 내 혼선'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

가상화폐 과세 방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일단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정책 방향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가상화폐 과세 딜레마…세금 매기려니 제도권 편입 '부담'
가상화폐 과세가 반드시 가상화폐의 제도권 편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 소득세법이 과세 대상을 열거한 기타소득에는 불법 사행 행위로 얻은 이득, 뇌물, 알선수재에 의한 금품 등도 포함돼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이 같은 부정한 소득에 대해서는 몰수·추징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 등에 한해 세금을 물리고 있다.

하지만 뇌물·불법도박 등은 비정기적이고 은밀하게 발생한다는 점에서 공개적·대규모로 일어나는 가상화폐 거래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 과세하려면 가상화폐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