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소기업 한 곳당 운전자금 지원액을 최대 25억원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연구개발(R&D) 지원 횟수도 제한할 방침이다. 경쟁력 없이 정부 자금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한계 중소기업)’을 무한정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11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출구조 혁신 추진방안’을 확정·발표했다.

◆운전자금 지원 25억원 제한

한 곳당 운전자금 지원 최대 25억으로 제한… 중소기업, 정부 돈으로 연명 못한다
정부는 이날 △혁신성장 △복지·고용안전망 △저출산 극복 △재정지출 효율화 등 4대 분야에 걸쳐 33개 지출구조 혁신 과제를 선정했다.

우선 중소기업 지원체계를 전면 수술하기로 했다. 지난해 정책자금을 지원받은 기업 중 2회 이상 지원받은 기업의 비중이 46.8%에 달했다. 반면 신규 기업의 신청 탈락률은 68.5%에 이르렀다. 정책자금이 기존에 받던 기업에 몰리면서 신규 신청 기업이 피해를 보는 구조다.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편중·중복 지원은 산업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11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소기업 성장촉진 방안’ 보고서에서 “중소기업이 공적자금 지원을 받으면 생존율이 5.32%포인트 높아지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4.92%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달 경제 전문가 102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가장 시급한 중소기업 정책으로 ‘경쟁력 낮은 중소기업의 과감한 퇴출’을 꼽은 응답이 37.3%로 가장 많았다.

이번에 정부가 새로 도입하기로 한 ‘정책자금 지원 졸업제’는 기업당 운전자금 지원총액을 25억원으로 제한했다. 정책자금의 60%는 의무적으로 신규 기업에 지원하는 ‘첫걸음기업 지원제’도 시행하기로 했다. 역시 중복 지원 논란이 일었던 R&D 자금 지원은 횟수를 제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최상대 기재부 재정혁신국장은 “구체적인 횟수는 관계부처와 추가 협의를 거쳐 확정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제도는 모든 기업에 적용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책자금에 의존하는 중소기업이 타깃이다.

◆산재보험료 할증폭 20%로 낮춰

정부는 기존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근로자보다 사업주 위주로 이뤄졌다는 판단에 따라 기업이 매출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이익 일부를 직원과 나누는 ‘미래 성과공유제’를 도입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청년 장기재직 시 인센티브를 부여해 중소기업 직원의 재산 형성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쌀 생산량과 연동돼 과잉생산을 유도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쌀 변동직불제는 생산량과 무관하게 소득을 보전해주는 ‘공익형 직불제’ 등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학재정지원 사업은 학부·특성화·산업연계·인문·여성공학 5개 사업을 ‘대학혁신지원사업’ 하나로 통합해 지원체계를 단순화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기로 했다.

병원과 환자의 과잉·중복 진료, 부당청구를 막기 위해 건강보험관리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데이터베이스(DB)를 연계해 부정수급 환자와 병원을 사전에 거르는 등 심사체계도 효율화한다. 산업재해 보험료 할증이 사고가 잦은 영세 사업주에게 주로 집중되는 현실을 반영해 할증폭을 50%에서 20%로 줄이고 30인 미만 사업장에는 할증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업별 지출 절감규모는 이날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사업은 이번 방안으로 지출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