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새해에는 '소확행(小確幸)' 합시다
‘2018년에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까?’

누구나 이맘때쯤이면 던져보는 화두(話頭)다. 미래의 계획은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시작된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해를 넘기며 촛불을 들고 추운 거리를 누벼야 했다. 늘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걱정을 안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여혐’이니 ‘한남’이니 하는 대립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갈등과 반목이 가득했다. 잇따른 크레인 사고와 대형 화재로 애꿎은 시민들이 희생됐다. 그나마 경제는 좀 나아진다고 하나, 이 또한 안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제발 올 한 해는 달라졌으면 좋겠다. 국가와 사회가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지고, 온 국민이 화합하고,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행복한 한 해가 되어야 한다.

행복은 사람마다 다르다. 주관적인 감정인 동시에,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배가 고픈 시절에는 삼시세끼면 족했다. 민주화의 열망과 정의로운 투쟁이 곧 행복이라고 확신하던 때도 있었다. 웰빙시대에는 내 몸을 위해 비타민을 먹고 정신을 위해 요가를 하는 것이, 그리고 힐링시대에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면서 정신적 안정을 얻는 것이 행복이다.

시대마다 행복은 다양한 색깔로 나타나지만, 공통분모는 존재한다. 바로 ‘즐거움’과 ‘의미’이다. 즐거움만 있다면 쾌락과 구분이 안 되고, 의미만 있다면 자칫 고통스럽기 쉽다. 쾌락과 행복을 혼동하면 인류는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중독의 핵심이 쾌락이기 때문이다. 드문 일이지만 의미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님과 같은 분들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행복이 찾아올까. 《트렌드 코리아 2018》(김난도 등)에서는 올 한 해 대한민국의 행복 트렌드는 ‘소확행(小確幸)’이라고 했다. 외계행성이나 기차노선의 이름 같기도 한 소확행은 ‘작고 확실한 행복’을 뜻한다. 비록 작고 소박하지만 현실 속에서 틀림없는 행복을 찾는 성향을 의미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등장하는 말로, 작가는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풀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 소확행이라고 했다.

어느 세대나 다음 세대를 걱정하지만, 이런 행복지향적인 세태를 못마땅해하는 기성세대가 적지 않다. 소확행이라는 이름의 낯섦만큼이나, 그들의 행복관이 도통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의 본능적 지향점은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만일 단순히 물질의 소유나 획득을 통한 소비행태라면 정말 걱정이 될 수밖에 없겠지만, 소확행은 과소비나 물질만능주의와는 다르다.

소유는 비교가 되고, 비교는 소비를 부추긴다. ‘지름신’에 지배당하는 순간 불행으로 이어진다. 어차피 소비활동은 행복의 일부이지, 결코 행복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음식으로 점심을 때워도 십수만 원짜리 뮤지컬 공연은 꼭 가야 하고, 회사를 때려치우더라도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야 하고, 잠은 고시원에서 자지만 수입 외제차를 타야만 행복하다면, 이것은 소확행이 아니다. 작고 확실한 행복인 소확행은 따뜻한 녹차 한 잔에도 만족하고, 좋은 친구와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봐도 감사하며, 스스로 요리해 먹는 소박한 음식에 뿌듯해하고, 동네 뒷골목 탐방에도 잔잔한 기쁨이 차오르는 것이다. 생각보다 쉽고 가깝고 편안한 행복이 소확행이다.

행복은 모두 다르지만, 어렵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레 행복하기는 글렀다고 자포자기하거나 애초부터 너무 얻기 어려운 행복을 원한다. 그러다보니 무리하게 되고, 시작은 행복이지만 결말은 불행이 되는 것이다.

작은 행복은 어렵지 않다. 작다고 얕잡아 보거나 실망할 필요 없다. 작은 행복이 모여서 큰 행복이 되는 법이다. 2018년 무술년부터는 소확행 덕에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김진세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