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6번 회의 참석하는 복지부 장관에게 연금 600조 맡기다니…"
“정부가 6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을 이용해 강력한 대주주로서 기업을 좌지우지하려 한다.”(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사진)

“1년에 6~7번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참석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운용 책임을 맡겨서는 안 된다.”(최광 전 복지부 장관)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토론회에서 나온 지적이다. 이번 토론회는 복지부와 국민연금이 기관투자가의 주식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를 내년 하반기 도입하겠다고 밝힌 데 따라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열렸다.

김 의원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부의 기업 경영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회사에 대해선 5%에 한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제한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 잘 굴러가지 않으면 주식 팔면 그만”

"1년 6번 회의 참석하는 복지부 장관에게 연금 600조 맡기다니…"
신장섭 교수는 우선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면 결국 연금 가입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부 주장에 대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기관투자가는 근본적으로 기업을 혁신할 능력이 없다”며 “기업이 잘 굴러가지 않으면 주식을 팔고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정부가 미국 등 스튜어드십 코드를 먼저 도입한 선진국을 예로 들며 도입을 추진하는 데 대해선 “기업 경쟁력을 높였다는 증거는 없고 오히려 기업의 성장 잠재력만 갉아먹었다”고 했다. 기업이 번 돈을 빼내는 창구 역할만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주 독재’가 이뤄졌다는 게 신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려는 진짜 목적은 국민연금을 앞세워 기업을 개혁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가 이른바 ‘5% 룰’을 완화하려는 것이 그 방증이라는 설명이다.

5% 룰은 ‘경영 참여’ 목적으로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가 지분 1%포인트 이상 변동이 생길 때마다 5일 내 지분변동 상황과 보유목적 등을 공시해야 하는 제도다. 국민연금은 대부분 ‘투자 목적’이지만 향후 ‘경영 참여’ 목적으로 지분 5% 이상을 매입할 경우 매매 전략까지 공시해야 해 정부가 그 부담을 줄여주려고 한다는 것이 신 교수의 분석이다.

KB금융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지난달 국민은행 노동조합이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찬성한 것은 이미 정권 뜻에 맞게 개입을 시작한 것이라고 신 교수는 지적했다. 노동이사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그는 “정부가 국민연금의 투표권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 중 연금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최초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성 위주로 기금운용위 구성해야”

최광 전 장관은 2013~2015년 국민연금 이사장을 맡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던 2015년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찬성했다는 이유로 문형표 당시 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구속됐다. 최 전 장관은 “복지부 장관이 기금 운용의 최종 책임을 지는 구조가 문제”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국민연금 운용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기금운용위원회다. 최 전 장관은 그러나 “기금운용위가 1년에 6~7번 열리고, 한 번 회의에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복지부 장관이 실제 쓰는 시간은 15시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기금 운용을 직접 관리하는 대신 전문가에게 맡기고 감독만 해야 한다는 것이 최 전 장관의 제안이다. 그는 “기금운용위 위원은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토론에 나선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은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며 “돈을 모아놓으니 마치 공돈으로 보고 이를 도구화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장재혁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스튜어드십 코드로 기업 경영에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라 장기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탁자의 책임을 다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일규/박종필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