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 유강은 옮김 / 이매진 / 399쪽 ㅣ 2만원
이쯤 되면 연방정부의 도움을 환영해야 마땅하지만 정반대다. 빨간색 주의 연간 예산 중 상당 부분이 연방 자금이다. 루이지애나는 44%에 달한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연방 자금을 환영하지 않는다. 환경오염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보면서도 환경보호 강화, 지구온난화 방지에 반대한다. 군대를 빼면 정부의 역할은 작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조세저항운동을 벌이는 티파티의 열성적 지지자가 된다.
자기 땅의 이방인들은 이런 역설적 상황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진보적 학자의 공감형 여행기다. 저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UC버클리의 사회학과 명예교수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하고 진보적이며 교육수준이 높고 개방적인 버클리에 사는 그는 이런 역설의 근원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루이지애나주였다. 그는 2011년부터 5년간 루이지애나 레이크찰스 등지에서 티파티 핵심지지자 40명과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20명을 인터뷰해 4690쪽 기록을 축적했다.
책은 한마디로 ‘풀뿌리 극우’들의 이야기다. ‘파란 미국’과 ‘빨간 미국’을 가르는 거대한 장벽을 넘어서려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저자는 극우 민초 속으로 들어간다. 배관공, 공장 기사, 자동차 정비사, 트럭 운전사, 전화수리공, 주부, 판매원, 복음성가 가수 등과 밥을 같이 먹고, 도널드 트럼프 선거 유세에도 함께했다. 요리대회, 낚시모임, 교회예배에도 동참했다. 석유 시추로 생긴 싱크홀과 석유 유출 피해를 입은 습지도 답사했다.
석유화학공장에서 배관공으로 일했던 82세의 리 셔먼은 젊은 시절 공장의 유해물질을 강에 몰래 버리는 일도 했다. 오염물질 유출 때문에 자신도 다쳤고, 회사에 의해 억울하게 해고됐다. 하지만 그는 연방 환경보호청 축소를 주장하고 티파티를 지지한다. 마이크 샤프는 규제를 거의 받지 않던 석유시추회사가 초래한 싱크홀의 피해자다. 그런데도 그는 티파티를 지지하며 모든 종류의 정부 규제를 철폐하라는 요구에 환호했다. 환경보호를 위한 지출을 포함한 정부 지출을 과감히 삭감하는 정책을 지지했다.
겉으로 봐선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거대한 역설’의 이면을 읽으려면 진보와 보수의 감정을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밀착형 인터뷰를 통해 저자가 읽어낸 풀뿌리 극우들의 내면에는 이런 게 있다.
언덕으로 이어지는 긴 줄의 가운데쯤에 인내심을 갖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이가 많고 기독교도이며 대부분 백인 남성이다. 언덕 위에는 모두가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이 있다. 지루한 기다림 속에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줄 뒤에 서 있던 유색인, 특히 흑인이다. 연방정부의 소수자 우대정책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 복지수당, 무상급식 등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다. 여성, 이민자, 난민, 공공부문 노동자도 새치기를 한다. 이들을 도와주는 세력이 있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과 연방 정부다. 배신감과 함께 화가 치민다.
저자는 “하위 90%의 사람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기계는 자동화와 공장의 해외 이전, 노동자들에 맞선 다국적 기업의 증대된 힘 때문에 멈춰선 상태였다”며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1950년에 가동을 멈췄고, 백인 남성과 나머지 모든 사람 사이의 경쟁이 고조됐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정체된 아메리칸 드림이 특히 취약한 생애주기인 50~70대 우파 사람들에게 타격을 가했다는 것. 진보 진영이 이들을 ‘얼빠진 촌뜨기 노동자’ ‘가난뱅이 흑인’ ‘일자무식 남부 맹신자’ 등으로 조롱하는 것도 두 진영의 벽을 쌓는 요인이다.
결국 ‘자기 땅에 사는 이방인’ 신세가 돼버린 이들이 극우 성향의 티파티를 지지하게 됐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이처럼 잔뜩 쌓여 있는 불쏘시개에 불을 붙여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갈수록 견고해지는 보수와 진보의 벽을 허물려면 이런 공감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