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법무실 등에 소속된 사내변호사가 대형 로펌으로 옮기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과 관련한 법률 이슈를 많이 다뤄본 사내변호사를 로펌이 선호하고 있어서다. 사내변호사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폭넓은 업계 네트워크를 활용하려는 로펌의 전략적인 영입이다. 사내변호사의 입지와 위상이 수년 새 크게 높아지면서 로펌 소속 변호사와 사내변호사의 ‘갑을 관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Law & Biz] "기업 경험·인맥 탄탄"…로펌 '사내변호사 모시기' 바람
산업 현장을 아는 사내변호사 인기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국3M 법무지원본부장인 이병화 변호사(사법연수원 27기)가 국내 2위권 로펌인 법무법인 광장으로 조만간 옮긴다. 이 변호사는 한국3M에서 10년 가까이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기업자문 등을 맡아 왔다. 그는 “사내변호사로서 ‘수요자’ 입장에서 법률 업무를 다룬 경험을 살려 대형 로펌에서 더 폭넓게 활동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이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로펌마다 유력 기업에서 법무팀 업무를 거친 변호사들이 전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율촌의 김지수 미국변호사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CLSA의 아시아 부동산펀드 사업개발팀 임원을 비롯해 일본계 패션유통회사, 제너럴일렉트릭(GE) 부동산사업부, 모건스탠리 등 다양한 업종에서 경험을 쌓았다.
[Law & Biz] "기업 경험·인맥 탄탄"…로펌 '사내변호사 모시기' 바람
세종의 송웅순 대표변호사(14기)는 삼성 법무실장 출신이다. 송 대표변호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에서 일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세종을 거쳐 삼성으로 옮겼다가 다시 세종으로 복귀한 독특한 경우다. 판사나 검사를 거친 전관이 아니면서 세종 대표변호사 자리까지 올랐다.

이 밖에 김앤장의 홍유석 미국변호사(전 한국오라클 대표), 광장의 이경훈 변호사(18기·전 삼성전자 상무)와 최우석 미국변호사(전 LG전자), 율촌의 김규식 변호사(25기·전 현대카드·캐피탈 경영법무실장)와 이승목 미국변호사(전 P&G, 삼성전자), 화우의 류송 변호사(34기·전 SK(주)), 바른의 한태영 변호사(41기·전 (주)CJ) 등이 로펌에서 활약하는 대표적인 사내변호사 출신들이다.

한 대형 로펌 대표변호사는 “예전만 해도 사내변호사라 하면 로펌의 ‘을’ 취급하던 인식이 있었지만 이들의 세력이 커지며 일종의 ‘갑·을 시프트’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로펌에는 이른바 ‘전관’ 출신이 많아 사내변호사에 대해 우월의식을 가지던 때도 있었지만 기업 속사정을 잘 아는 사내변호사의 실력과 경험을 로펌들이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관으로 기업을 거쳤다가 로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변호사도 많다. 이건종 화우 변호사(15기·전 현대중공업 준법경영담당 사장), 김병주 바른 변호사(19기·전 두산인프라코어 법무실장), 이준승 광장 변호사(20기·전 STX 부사장), 조규석 율촌 변호사(26기·전 (주)두산 법무실 상무), 유성훈 세종 변호사(26기·전 동양그룹 법무실장) 등이 대표적이다.

일과 삶의 균형 중시하는 사회 풍조도 영향

로스쿨 변호사가 한 해 1000명 이상 배출되면서 사내변호사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사내변호사 수요는 준법경영 강화 추세와 맞물리면서 대기업 위주에서 중견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내변호사에 대한 기업의 대우도 과거보다 높아지고 있다. 주니어 변호사들 사이에선 업무 강도가 로펌에 비해 낮으면서도 처우가 좋은 사내변호사 진출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이른바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사내변호사로 이직을 고려하는 로펌 변호사가 종종 눈에 띈다”고 했다.

국내 변호사 2만3000여 명 중 사내변호사는 약 3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변호사 등 해외 자격증을 가진 변호사를 포함하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내변호사는 과거엔 계약서 검토와 로펌이 수행하는 소송관리 등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사내 컨설팅을 통해 분쟁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등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활동 영역도 기획, 마케팅, 인사 등으로 다양해졌다.

사내변호사 단체인 인하우스카운슬포럼(IHCF) 회장을 지낸 조대환 변호사(26기·스코르재보험 전무)는 “산업별로 고도화 및 전문화가 이뤄져 현장을 모르고 법만 알아선 제대로 된 컨설팅을 하기가 어려워 경험이 많은 사내변호사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