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혁신처가 부당·불법 지시에 대한 공무원의 업무 거부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국가 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상관의 명백히 위법한 지시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행을 거부해도 인사상 불이익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행 거부로 인사조치 등을 받게 되면 소청심사 외에도 고충상담 또는 고충심사를 청구해 구제받을 수 있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제2의 노태강’ 같은 피해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조항이 가져올, 의도치 않은 부작용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입법예고대로 된다면 앞으로 업무 지시를 받은 공무원이 지시의 위법성이나 부당성 여부에 대해 법률 자문부터 받아야겠다고 나와도 정부로서는 할 말이 없다. 정부는 ‘명백히’ 위법한 경우에 한해서라고 하지만 공무원이 이를 확대해석해 지시나 명령을 거부하면 그뿐이다.

규제 개혁도 동력을 급격히 상실할 우려가 있다. 복잡한 규정과 절차로 가득찬 한국의 법적 환경하에서 정부는 공무원이 ‘적극행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선 면책하겠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업무 거부권이 도입되면 공무원이 굳이 절차상 하자나 규정 위반의 위험성을 무릅쓰면서까지 적극행정에 나설지 의문이다.

인사혁신처가 직시해야 할 것은 또 있다. 지금 한국 관료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진짜 이유는 부당·불법 지시가 아니라 정당·합법 지시를 따랐음에도, 단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책임 추궁이 잇따르고 있는 점이다. 소명의식을 갖고 업무를 추진했던 공무원마저 새 정부가 탈(脫)원전, 성과연봉제 폐기 등 정책을 180도 뒤집는 바람에 죄인 아닌 죄인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허다한 판국이다.

이러다보니 관가에선 “다음 정권에서 살아남으려면 상관이 무슨 지시를 내리든 몸을 사리는 게 상책”이란 얘기까지 나돈다. 공무원의 업무거부권 도입이 가뜩이나 한국 관료사회의 고질적 병폐라는 복지부동, 보신주의 등을 더욱 고착화하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행정이 산으로 가면 그 피해는 국민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