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투자은행(IB) 출범으로 그동안 대출 사각지대에 있던 취약업종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자금조달 선택지 확대’ 효과를 누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형 증권사들이 발행어음을 찍어 조달하는 자금을 연 수익률 3~5% 수준의 기업어음(CP)과 사모사채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1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등 초대형 IB들은 단기금융(발행어음 조달) 업무 확대에 대비해 유동성관리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CP 인수·중개업무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 증권사의 기업금융본부장은 “고객 수요에 따라 CP 취급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전담인력을 확충하고 인수물량을 늘리는 등 예행연습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국내 기업들의 CP 발행잔액은 약 63조원(전자단기사채 포함)이다. 초대형 IB들이 금융위원회에 인가 신청서를 낸 지난 7월 이후로만 8조원(15%)가량 불어났다. 만기가 통상 3개월 이내로 짧은 CP는 대출이나 회사채보다 금융비용이 싸 취약업종 기업들의 발행 수요가 많은 편이다. 초대형 IB 관점에선 만기가 짧은 자산을 충분히 보유함으로써 자산-부채 유동성비율 관리가 쉬워지는 장점도 있다.

건설·해운·조선 등 취약업종 기업들의 사모사채 발행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게 증권업계 전망이다. 초대형 IB는 발행어음 조달 금액(최대 자기자본의 두 배까지 발행 가능)의 절반 이상을 신용등급 A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 매입 등에 써야 한다.

사모사채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공모사채와 달리 은행 증권 등 기관투자가를 비롯한 소수(49명 이하)의 투자자와 만기·금리 조건을 협의해 발행한다. 공모사채처럼 투자위험을 상세히 담은 증권신고서를 작성하거나 신용등급을 받을 의무가 없어 취약업종 기업들의 선호도가 높다. 하지만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보수적인 성향 탓에 실제 발행엔 애를 먹고 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