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전관예우와 부정청탁 근절을 위한 ‘한국판 로비스트법’을 내놨다. 공정위를 출입하는 대기업과 법무법인 담당자들을 등록시켜 관리하고 별도의 윤리준칙을 준수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외부와의 접촉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규율”이라는 불만과 “위반 여부를 가려낼 방안이 마땅치 않은 보여주기식 대책”이라는 비판이 함께 나오고 있다.
공정위, 미등록 대기업·로펌 직원과 접촉 차단
공정위, 미등록 대기업·로펌 직원과 접촉 차단
◆400명 등록해 ‘특별관리’

공정위는 24일 정부 기관 최초로 ‘외부인 출입·접촉 관리 방안 및 윤리 준칙’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관련 세부 내용을 담은 운영 규정을 내년 1월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이번 대책에서 출입이 빈번하면서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외부인은 앞으로 공정위 직원을 접촉할 때 반드시 사전등록을 하도록 했다. 적용 대상은 연간 매출(외형거래액) 100억원 이상 법무법인이나 합동법률사무소에서 공정위 사건을 담당한 경력이 있는 변호사 및 회계사, 공시 대상 기업집단에 소속돼 있으면서 공정위 관련 대관업무를 주로 하는 대기업 임직원이다. 법무법인이나 합동법률사무소는 김앤장 광장 태평양 등 28곳, 공시 대상 기업집단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등 57개 그룹이다. 공정위 퇴직자가 이들 법무법인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공정거래 관련 업무를 맡으면 역시 사전등록 대상이 된다. 공정위는 전체 등록자 수가 400~500명 수준일 것으로 보고 있다.

등록된 외부인은 공정위 직원을 만날 때 사건 수임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금지된다. 공정위 직원에게서 조사계획을 입수하는 등 비밀을 수집해서는 안 된다. 사전에 약속된 직원 외에 다른 직원을 만날 수도 없다. 대면 접촉뿐 아니라 전화통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 등 비대면 접촉도 마찬가지로 규제를 받는다. 이를 어기면 1년 동안 출입이 금지된다. 공정위 직원은 등록된 대기업·로펌 직원과 사무실에서 만날 때는 상세한 면담 내용을 5일 안에 감사담당관실에 보고해야 한다.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공정위를 방문하는 외부인의 출입 관리는 보안 조치일 뿐 부당한 접촉이나 영향력 행사를 차단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지난달 직무 관련자의 외부인 사적 접촉을 금지하는 신뢰 제고 방안을 발표했지만 조직 내부 규율 강화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고 대책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공무원을 ‘외딴 섬’ 만드나”

공정위 내부에서는 “외부인과의 접촉을 지나치게 규율해 공정위 직원들을 ‘외딴 섬’으로 만드는 대책”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책 수립 과정에서 직원들의 문제 제기가 많았다”며 “업무에 필요한 문제 없는 만남까지 규율하려는 것은 아닌 만큼 지속적으로 직원들을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한 법무법인의 공정거래 관련 변호사는 “전화로 공정위 직원에게 부정 청탁을 했다면 이를 밝혀낼 방법이 있겠느냐”며 “정상적인 만남을 위축시키면서 은밀한 청탁만 조장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력기관을 통한 외압을 막을 대책은 빠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정위는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에서 외압을 받아 CJ E&M의 불공정행위 혐의를 조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신 부위원장은 “이번 대책은 피조사기업, 대리 변호사, 공정위 퇴직자 등 민간에서의 부적절한 접촉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앞으로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