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이런 국정감사, 계속할 이유 있나
매년 서울 여의도 가을 단풍과 함께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된다. 단풍은 아름답지만 국감은 한 시간을 참고 앉아 있기 어려울 정도로 고역이다. 왜 그럴까. 헌법 제61조에 따르면 국감은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입법부 국회가 행정부 견제 차원에서 정부를 감사하고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행위다. 하지만 올해도 정책 질의는 빈약하고, 여야는 정치투쟁에 목매고 있고, 정부는 앉아서 정쟁을 지켜보는 국감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는 정치권이 국감 기간에 하라는 국감은 하지 않고 ‘적폐청산’ 대(對) ‘신적폐 저지’(정치보복)의 대결 정치와 정당 간 통합 모의에 집중했다. 전력을 다해 정부를 물어뜯어야 할 야당조차 사냥은 제쳐 두고 짝짓기에 몰두한 것이다.

여야 대립으로 법제사법위원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 7개 상임위원회 국감은 중단됐다. 법사위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적법성 논란으로 파행된 뒤 다시 열리지 못하고 있고, 교문위는 지난 10년간 내리 파행을 겪고 있다. 내용 면에서는 공격과 수비만 바뀌었을 뿐 야당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여당은 물타기성 질문으로 정부를 감싸는 행태가 과거와 동일하다. 피감 부처는 여야의 말싸움과 기싸움으로 감사가 무산되면 안도하는 눈치다. 여당이 비호해주니 정부는 정책 실패를 반성할 필요도 개선할 필요도 없게 된다. 여당 의원이든 야당 의원이든 국회의원이라면 삼권분립에 따라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데 도리어 여당 의원이 야당 의원을 견제하고 트집잡기에 바쁜 국감이 됐다.

이제 이런 방식의 국감은 그만해야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의회는 피감 기관을 시찰하고 질의하는 우리 방식의 권위적 국감을 시행하지 않고 상시 국정조사 방식으로 대신하고 있다.

국감이 ‘기업감사’가 돼 버린 본말전도(本末顚倒) 현상도 문제다. 과거부터 기업인이 국회에 불려가 하는 일 없이 마냥 기다리다가 의원들 생색내기 질문에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국감 기간 외국 출장을 가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올해는 줄었지만 기업인을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대거 불러 TV 카메라 앞에서 죄인 취급하고 비인간적으로 다그치며 폼을 잡고 싶어 하는 의원들의 ‘스노비즘(snobbism·속물주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또 최저임금에 관해 정부·여당의 포퓰리즘과 다른 학문적 의견을 개진한 이병태 KAIST 교수에게 일부 여당 의원은 말폭탄을 퍼부었다. 국민의 대표가 국민에게 ‘갑질’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중세의 길드(guild·동업조합)처럼 국감장에서 일어나는 의원들의 말폭탄은 여야가 다르지 않다.

또 행정부 공백이 심각하다. 한국은 고위·중견 핵심 행정 공무원들이 국감부터 예산심의까지 3개월 이상을 국회 업무에 매달린다. 매년 반복되는 졸속·판박이 국감에 공무원을 수개월씩 준비·대기시키는 것은 국력 낭비다.

국감은 이제 ‘개선이냐 폐지냐’의 기로에 있다. 가장 좋은 대안은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실무자 중심의 대(對)정부 상시청문회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피감 기관이 많아 오전 오후 메뚜기식으로 옮겨 다닐 필요가 없다. 매년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지적할 필요 없이 과거 지적한 사항에 대한 후속 조치와 보완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또 사안에 따라 해당 상임위원회가 청문회를 열어 언제든 실무자를 불러 정책을 점검하고 재정 운용에 대해 감독하면 된다.

하지만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시킬 제도적 보완책은 필요하다. 입법부는 행정부에 비해 정보가 적고 정확하지 않아 정책 대안 마련과 입법에 필요한 정보를 행정부로부터 제공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감사원을 국회로 가져와 ‘감사원 감사 국회 보고’를 통해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보 비대칭성을 완화해 재정에 대한 사후 통제를 강화하고 공무원 부패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을 강화하면 된다. 목표를 상실하고 ‘존재의 이유’조차 희미해진 국감을 개선할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iykim@hally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