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15일 20대 총선을 한 달가량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40명은 ‘비정상적 국회의원 특권 없애기’ 등 5대 개혁과제 실천을 다짐했다. ‘국회의원 무(無)노동 무임금’을 비롯해 1년 안에 약속들을 이행하지 못하면 1년치 세비(국회의원이 받는 보수)를 전부 반납하겠다며 신문광고까지 했다. 하나도 실천하지 못했는데도 1년이 지나 세비를 한 푼이라도 반납한 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특권 내려놓기 공약 매번 공염불

[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국회 적폐부터 없애라
더불어민주당도 국회 본회의 및 상임위원회 회의 불참 때 ‘무노동 무임금’ 적용, 의원 체포동의안 기명투표, 불체포 특권 및 면책특권 제한, 정치인 낙하산 인사를 금지하는 ‘정피아 방지법’ 제정, 부정부패에 연루된 국회의원을 주민들이 투표로 심판하는 주민소환제 도입 등을 공약했다. 지금까지 성과는 체포동의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뒤 72시간 이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다음 본회의에 자동 상정해 표결하도록 한 것뿐이다. 나머지는 후속 논의 한 번 없었다.

이런 류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공약들은 각 정당이 선거철만 되면 앞다퉈 내놓는 단골 메뉴다. 2012년 총선과 대선 때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은 의원 세비 30% 삭감, 무노동 무임금 도입 등을 약속하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4년 뒤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관련 법안들은 자동폐기됐다.

새누리당은 회기 중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의원 특별활동비를 실제 본회의나 상임위 회의에 참석한 만큼만 지급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도 먼지만 덮어쓰다가 폐기됐다. 민주통합당은 대선공약집에 “의원 정수 축소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문구를 넣었으나, 선거 뒤 시치미를 뗐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국민참여 경선 법제화, 부정부패 원인 제공자에게 선거비용 부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상설화 등도 ‘용두사미’에 그친 공약들이다. 다선(多選) 의원 중심으로 줄을 세우고, 전문성과 아무 관계없이 3선만 되면 국회 상임위원장을 돌아가면서 맡는 관행, 특수활동비 투명 공개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말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NATO(no action talking only) 국회’라는 비판은 입이 아플 정도다.

타율(他律)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것도 국회의원의 특권이다.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만든 법을 지키지 않는 ‘셀프 위법’을 밥먹듯이 해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전년도 예산 결산안과 후년도 예산안을 법정 시한을 넘겨 처리하는 구태가 되풀이돼도 통제할 방법이 없다. 여론의 비판 화살만 피하면 그만이어서 법 위반은 습관성이 됐다. 국회의원들이 제 머리 깎을 전권을 움켜쥐다 보니 이렇게 됐을 것이다.

'셀프 위법' 통제할 방법 없어

국회의원들은 책임을 지지 않지만 권한은 크다. 현행 헌법에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 및 국무위원 해임건의권은 있는 반면,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은 없다. 국정감사·조사권에다 국회의원·장관 겸직도 가능하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힘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왕적 국회’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국회의원들이 틈만 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자고 하고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다. 여야는 서로를 향해 “적폐”니 “신(新)적폐”니 공격의 화살을 날리는 데 여념이 없다. 개혁 대상이 적폐청산 운운하는 것은 낯 두꺼운 위선이다. 국회의원들은 남의 적폐를 입에 올리기 전에 ‘제 눈 속 들보’부터 없애겠다고 하는 게 순서다. 그래야 국민의 공감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