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시작하는 이원희 화백의 ‘설악’.
18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시작하는 이원희 화백의 ‘설악’.
대구 계명대 미대 학장을 지낸 서양화가 이원희 씨(62)는 단색조의 추상과 미니멀리즘 같은 개념미술이 유행하던 1970년대 후반부터 때묻지 않은 자연을 화폭에 담아낸 현대적 신구상 화풍과 개성 넘치는 인물화 장르를 고수하고 있다.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초상화를 그려 주목받은 그는 독재와 민주화, 디지털시대를 겪으면서도 한국 구상미술의 기름진 터전을 일구며 40여 년을 달려왔다.

‘인물화의 대가’ 이 화백을 비롯해 1950~1960년대 태어나 사회 정치적 변혁기를 거치며 치열한 내부 경쟁을 통해 탄탄한 실력을 쌓아온 5060세대 미술가들이 저마다 독특한 ‘손맛’이 깃든 신작을 쏟아내며 늦가을 화단을 달구고 있다. 최근 서울 인사동 청담동 등 화랑가와 미술관에는 1.5세대 단색화가 김태호 씨를 비롯해 재미화가 강익중, 김덕용, 정현숙, 차명희, 황재형, 오세열 씨 등 30여 명이 개인전을 열거나 준비 중이다. 화랑과 미술관이 미술시장의 침체 여파로 실험성 강한 젊은 작가보다 어느 정도 작품성을 검증받은 중견 화가의 전시회를 기획한 결과다. 미술계 ‘허리’인 이들 작가의 잇따른 컴백이 지난 3월 시작된 삼성미술관 리움의 ‘개점휴업’과 한·중 관계 악화 등으로 한껏 움츠러든 미술시장 분위기를 바꿔놓을지 기대된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경기회복 기대감과 맞물려 ‘바닥’을 다져가는 미술 시장은 지금 미래의 ‘블루칩’ 찾기에 분주하다”며 “중견 작가 작품이 시장에 쏟아져나오는 것은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낀세대’ 작가들 출동

중진작가 가을 화단 점령…침체된 시장에 활력소?
3040세대와 7080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 불리던 이들 작가는 얄팍한 트렌드에 의지하기보다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자기성찰, 혁신적 시도에 독창성까지 가미된 작품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서양화가 이원희 씨는 18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시작한다. 우리 산하의 정취를 인상주의적 풍경화 기법으로 화폭에 담아온 신작과 유명인사들의 초상화 등 30여 점을 내보인다.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는 김덕용 씨는 오는 31일까지 서울 화동 이화익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펼친다. 나전칠기 방식으로 나무판에 자개도 붙인 뒤 그 위에 적색, 청색, 녹색, 분홍색 등 다양한 천연 색깔로 형상을 그린 신작 40여 점을 걸었다. 전통 나전칠기 소재인 자개를 이용해 전통을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정현숙 씨의 개인전은 다도화랑에 마련됐다. 탄탄한 화력을 갖춘 김병종, 오용길, 정우범, 서승원, 이석주, 김정수, 이이남, 황주리, 박은선, 임효 등 중진 작가들은 선화랑 개관 40주년 기념전 ‘새로운 창을 열다’에 참여해 색깔 전쟁을 벌인다. 민중화가 황재형 씨(가나아트센터), 국제성을 인정받고 있는 오세열 씨(학고재갤러리)도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유망 작가를 유치하기 위한 미술관의 경쟁도 치열하다. 아르코미술관은 재미화가 강익중 씨를 전격 초대했고, 제주 아라리오뮤지엄은 김태호 씨 개인전을 열고 신작을 선보이고 있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은 한국화가 차명희 씨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글로벌 흐름과 한국 멋으로 승부

이들 작가의 전시회는 미술애호가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젊은 작가에 비해 어느 정도 작품성이 검증된 데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장기 투자 차원에서 컬렉터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게 화랑가의 분석이다. 최근 원로 화가들의 단색화를 중심으로 한 고가 시장이 보합세를 보이는 사이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이들 작품이 향후 시장을 이끌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7080 작가들의 작품 값은 너무 오른 반면 5060 작가들은 검증을 거쳐 가격 변동성이 비교적 크지 않다”며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면서 한국적 멋을 잘 표현하느냐가 상품성의 잣대가 된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