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기업] '슈퍼사이클' 올라탄 석유화학… 미래 먹거리 확보에 주력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이 지속될 전망이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안팎의 박스권에 머무르는 데다 미국 최대 정유 화학시설 단지가 있는 텍사스주 멕시코만 지역이 허리케인 ‘하비’로 큰 피해를 보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반사이익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정유사와 석유화학사들은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호실적 이어지며 어닝서프라이즈 예고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올해 3분기 호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제품 가격에서 원료비를 뺀 값인 정제마진은 국내 정유사 실적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인데, 정제마진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지난달 평균(27일 기준)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9.1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초에는 연중 최고치인 10달러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8월 평균 정제마진은 8.5달러, 7월 평균은 7.0달러였다. 지난해 평균 6.1달러와 비교하면 30%가량 높은 수준이다.

허리케인 하비의 영향으로 국내 화학업계가 생산하는 에틸렌 가격도 급등했다.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8월 에틸렌 평균 가격은 t당 1210달러로, 지난 2월(1324달러) 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22일에는 1351달러까지 뛰었다. 태풍 영향으로 미국 내 에틸렌 생산량의 47%에 해당하는 1800만t 규모의 생산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은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각종 생필품부터 자동차를 비롯한 주요 산업재 생산에 필수적인 원료다.

에틸렌 공급이 줄면서 에틸렌 가격에서 원재료 가격을 뺀 에틸렌 마진도 늘어났다. 국내 기업의 에틸렌 연간 생산 규모는 △롯데케미칼 323만t △LG화학 220만t △여천NCC 195만t △한화토탈 109만t △SK종합화학 86만t △대한유화 80만t 등이다.

특히 범용 제품의 매출 의존도가 높은 롯데케미칼과 정유부문 및 화학부문에서 동시에 호실적을 달성한 SK이노베이션의 올해 실적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해 영업이익 2조5443억원을 기록한 롯데케미칼의 올해 시장 전망치는 2조9000억원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주요 증권사들은 SK이노베이션의 올해 영업이익을 작년과 비슷한 3조2103억원으로 예상했다.

미래 먹거리 확보에 주력

석유화학업계는 호황기에 쌓은 실적을 바탕으로 △해외 사업을 늘리거나 △연구개발(R&D) 비용을 확대하고 △고부가 제품 위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변화시키며 미래 대비에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이 중국 국유 석유기업 시노펙과 손잡고 중국에 에틸렌 생산공장(중한석화)을 지은 게 단적인 예다. 지난 2월 미국 1위 화학기업 다우케미칼의 에틸렌 아크릴산 사업도 인수했다. 5월에는 신성장 동력인 전기차 배터리와 화학사업을 중심으로 2020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LG화학 역시 고부가 제품 비중을 높이고 전기차 배터리 등 신사업 확대를 통해 유가와 시황 영향을 덜 받는 사업 구조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에너지, 물, 바이오를 주력사업으로 삼고 올해에만 1조원을 R&D에 쏟아부어 2025년까지 ‘글로벌 빅5’ 화학업체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달에는 전남 나주 공장에 2300억원을 투자해 고부가가치 제품 R&D 생산단지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말 들어서는 연구개발센터는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원료부터 미래에 유망한 신물질과 고부가 소재를 개발한다.

롯데케미칼은 2010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공을 들여 인수한 롯데케미칼 타이탄(LC타이탄)을 올 7월 말레이시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LC타이탄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사업장을 갖춘 동남아시아 대표 화학사다. 주 생산품목은 에틸렌(연간 72만t), 폴리에틸렌(PE·연간 101만t), 폴리프로필렌(PP·연간 44만t)이다. 지난해 매출 2조2851억원과 영업이익 5059억원을 기록했다.

한화케미칼은 업계 최초로 사우디에 석유화학 공장(인터내셔널 폴리머)을 건설했다. 사우디 민간 석유회사 시프켐과 합작을 통해서다. 사우디 석유회사와 손잡고 ‘값싼’ 원료를 확보해 원가경쟁력을 갖춘다는 전략이다. 2010년 인수한 한화큐셀은 태양광 전지 제조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