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규제의 틀을 ‘규정 중심’에서 ‘원칙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법령이 급격한 금융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소비자 보호에도 구멍이 생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그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금융산업 혁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규제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며 원칙 중심 규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거론했다.

규정 중심 규제는 허용하는 행위를 법령에 일일이 열거하는 포지티브(positive) 시스템인 반면, 원칙 중심 규제는 일반 원칙만 명시하고 구체적인 준수 방법은 자율에 맡기는 방식이다. 영국이 원칙 중심 규제체계를 먼저 도입했고, 미국과 일본은 기존 규정 중심 방식과의 절충을 추진하는 중이다. 선진국들은 규제 편의성이 아니라 금융혁신과 소비자 보호를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느냐를 중시하는 모습이다.

지금까지의 규정 중심 금융규제는 많은 폐해를 낳았다. 관치(官治)가 뿌리 깊게 자리잡은 배경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금융당국은 인허가권을 틀어쥔 데다 복잡한 규정 해석을 앞세워 금융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얽히고설킨 규정에 발목이 잡힌 금융회사들이 혁신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정해진 규정만 지키면 된다는 점에서 일부 금융회사의 편법 경영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금융규제 수준은 금융의 국제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원칙 중심 규제로의 전환은 경직적인 규제를 시장친화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금융회사는 새 사업모델이나 상품 개발에 유연성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방식의 금융혁신에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하다. 원칙 중심 규제가 반드시 규제기준의 완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회사는 더 많은 자율권을 얻는 대신, 규제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책임의식과 자기통제 능력을 갖춰야 한다. 원칙 중심 금융규제를 위해서는 민·관 모두가 환골탈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