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제이 유엔 주재 중국대사(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1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 표결에 찬성하는 뜻으로 손을 들고 있다. 이날 안보리는 북한 섬유 및 의류 수입 금지, 원유·정제유 수출 상한제가 골자인 ‘대북제재 결의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유엔본부신화연합뉴스
류제이 유엔 주재 중국대사(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1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 표결에 찬성하는 뜻으로 손을 들고 있다. 이날 안보리는 북한 섬유 및 의류 수입 금지, 원유·정제유 수출 상한제가 골자인 ‘대북제재 결의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유엔본부신화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1일(현지시간) 만장일치로 채택한 대북 추가 제재 결의(2375호) 내용이 기대를 크게 밑돈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북(對北) 원유 공급 전면 중단,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해외 자산 동결이 빠졌기 때문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의 대북 역할을 기대하기보다 직접 대중(對中)·대북 제재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이 추가 도발할 경우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 금융회사, 개인 제재)과 한국 내 전술핵 배치 등 고강도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돈줄부터 죄어라”

중국·러시아 압박에만 기댄 북핵 제재…"북한과의 시간 싸움에서 질 것"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대북 원유 공급 전면 중단과 김정은의 해외 자산 동결이 제외된 이번 추가 제재 내용을 두고 “차(車) 떼고 포(包) 뗀 격”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에 전방위 압박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 완성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에 기대는 제재안으로는 시간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단독)제재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공화당)은 지난주 의회를 방문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중국에 대한 최고 압박 정책이 필요하다”며 “중국 금융회사를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완전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한의 최대 지원국인 중국이 북한과 금융거래를 할 수 없도록 원천봉쇄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도입할 때라는 것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부 장관도 중국에 대한 압박 카드를 꺼냈다. 그는 12일 뉴욕에서 CNBC가 주최한 알파콘퍼런스에 참석해 “중국이 유엔 제재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미국 및 국제 달러화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 카드로 계속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할 전망이다. 최근 백악관과 의회 지도부는 한국과 일본, 대만으로 이어지는 ‘전술핵 도미노’ 가능성으로 위협하며 중국의 단호한 대북 대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北, 아직 선을 넘지 않았다”

미국 중국 등 관련국들은 안보리의 추가 제재 채택 후에도 대화 가능성을 열어놨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북한이 아직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며 “만약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한다면 미래를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류제이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미국과 다른 접근 방식의 대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쌍중단)을 전제로 “(북핵) 당사자들은 서둘러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북한은 미국과 협상에 나서기 전 핵무기를 완성하기 위해 도발을 서두를 것이고,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 도입과 김정은 통치자금줄 차단, 전술핵 재배치 카드 등으로 압박을 극대화할 것”이라며 “그러나 당분간 긴장 수위가 높아지더라도 내년 초 협상 국면이 열릴 수 있다”고 관측했다.

미·러 차관 회담 주목돼

북한이 당분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정상각도 발사 등 몇 차례 도발을 이어가겠지만 오는 1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등을 계기로 북·미 간 또는 남북 간 대화의 물꼬가 터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다.

미·중 간 북핵 해법 도출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의 방중 일정은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역할도 주목된다.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부차관보)는 11일 북핵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로 건너갔다. 그는 12일 모스크바에서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아태지역담당 외무차관과 비공개 회담을 한다. 윤 대표의 방문은 러시아 정부 초청으로 이뤄졌다. 러시아는 최근 북핵 사태 해결을 중재하겠다고 나섰다.

워싱턴=박수진/뉴욕=김현석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