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기자] ‘죽음의 랠리’라고 불리는 경주 대회가 있다. 다카르랠리다. 이 랠리의 창시자는 프랑스의 모험가 티에르 사빈이다. 그는 1970년대 중반 모터사이클로 사하라사막 횡단에 나섰다가 길을 잃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 때 사빈은 생과 사의 경계를 오가는 극한 상황에 대한 매력에 빠졌고, 사하라사막을 횡단하는 경주를 계획했다. 마침내 1979년, 파리를 출발해 알제리, 니제르, 말리를 거쳐 세네갈 다카르에 도착하는 ‘파리 오아시스 다카르 랠리’가 시작됐다. 이후 매년 개최되던 경주는 2008년 아프리카 지역의 전쟁과 테러 위협으로 대회 개막 하루를 앞두고 취소됐고, 이듬해인 2009년부터는 사하라사막 대신 남미의 아타카마사막을 거치는 코스로 변경됐다. 오늘날의 다카르랠리다.
[레이싱 텐]‘지옥의 명기’ 혼다 아프리카 트윈 개발 연대기(上)
지금까지 60여명이 이 랠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랠리를 만든 사빈도 랠리 중 생을 마감했다. ‘죽음의 랠리’라는 게 헛말이 아닌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차량과 사람이 모래바람에 뒤섞여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이를 버텨낸 명기도 탄생했다. 혼다의 모터사이클 아프리카 트윈이 그 중 하나다.
[레이싱 텐]‘지옥의 명기’ 혼다 아프리카 트윈 개발 연대기(上)
아프리카 트윈은 1980년대에 극한의 압박을 딛고 다섯 차례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셀 수 없는 시행착오 속에서 다져진 아프리카 트윈의 치밀한 성능은 혼다의 전매특허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레이싱 텐]‘지옥의 명기’ 혼다 아프리카 트윈 개발 연대기(上)
◆화려한 등장
아프리카 트윈은 등장부터 화려했다. 1981년 혼다는 XR500R로 랠리에 참가했다. 첫 참가였지만 XR500R의 질주에는 거침이 없었고 6위의 성적으로 데뷔전을 마쳤다. 이듬해 자신감이 붙은 혼다는 가장 높은 곳을 겨냥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두 번째 참가한 대회에서 XR500R가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과거 야마하에서 두 번의 우승 맛을 본 시릴 느보 선수가 혼다에 우승컵을 안겨줬다.
데뷔 2년차인 혼다 XR500R가 경쟁 기종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자 전 세계 모터사이클 브랜드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혼다의 제품 기술력은 완성도가 높았고 내구성은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특명 V' 한계를 넘어라
1983년 혼다에게 넘어야 할 산이 다가왔다. BMW였다. 단기통 엔진을 달고 달리던 XR500R은 BMW의 2기통 수평대향 엔진(박서 엔진)에 비해 출력과 토크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혼다는 1985년까지 3년 간 1위 자리를 BMW에 내줘야 했다. 대책이 필요했다.
해결책은 하나. 제품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혼다는 개발에 착수했다. 무게는 가볍지만 튼튼해야 하고, 엔진의 출력은 높으면서도 고르게 힘을 내야 했다. 최고속도는 180km/h, 연료효율도 간과해선 안된다. 정비효율성도 높아야 했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다시 다카르 랠리에서 우승컵을 차지할 수 있었다. 결과물은 1986년 등장한 NXR750이었다. 배기량 779cc V트윈 엔진을 탑재한 NXR750은 7000rpm에서 최고출력 75마력의 성능을 갖췄다. 몸무게는 189kg으로 가벼웠고 59리터짜리 연료탱크를 장착했다.
[레이싱 텐]‘지옥의 명기’ 혼다 아프리카 트윈 개발 연대기(上)
강한 심장과 근육으로 재무장한 NXR750은 혼다를 다카르 랠리의 최강자 자리에 다시 올려놓았다. 원투피니시를 기록하며 경쟁자들을 돌려세웠다. 혼다는 한 번 잡은 승기를 다시 놓치지 않았다. NXR750은 1989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사람들은 명기의 등장에 ‘사막의 여신’, ‘사막의 혁명’이라는 별명으로 화답했다.
랠리를 휩쓴 NXR750은 양산형 버전으로 나와 모터스포츠 팬들을 열광케 했다. 1988년 등장한 XRV시리즈, 일명 ‘아프리카 트윈’이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