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증권회사 노조가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참석을 보장하라고 하는 등 경영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금융계는 친(親)노동계 성향 정부 출범에 금융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은행 노조는 참여연대 출신 하승수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방안과 지배구조와 관련한 불합리한 규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29일 밝혔다. 전체 주식의 약 1%인 우리사주 지분을 지렛대 삼아 소액주주운동도 본격화하기로 했다. 국민은행 노조는 이를 알리기 위해 다음달 5일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경영 참여하겠다"는 금융노조
국민은행 노조는 경영 참여 요구를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박홍배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전직 관료나 정치권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관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임원추천위원회와 이사회 규정을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며 “향후 사외이사 선임과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근로자 처우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도 경영 참여를 요구하는 노조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사측과 협상에 나선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의 ‘2017년 임금 및 통일 단체협약 요구안’에는 노조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참석 보장(노동이사제)과 임원회의 참석, 임원회의 회의록 및 회계장부 열람 등이다.

은행권 노사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은행들은 노조의 요구에 힘없이 밀리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최근 옛 외환은행 직원들에게 행사비 명목으로 지급돼 온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라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KEB하나은행은 하나·외환은행 합병 이전 옛 외환은행 직원들의 가정의 달 및 근로자의 날 행사비 등을 노사 합의가 늦어지면서 지급하지 않았다.

"경영 참여하겠다"는 금융노조
이 은행은 이달 말까지 통상 수준보다 큰 규모의 승진 인사를 한다는 것까지 노조와 합의했다. 이와 별도로 노조는 부당노동행위를 이유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은행 법인과 함영주 행장을 상대로 낸 고소·고발은 취하했다. 그러나 작년 말 노조 선거에 개입한 인사에 대한 징계는 여전히 요구하고 있다. KEB하나은행 노조 관계자는 29일 “관련자 징계에 미온적인 처리를 할 경우 정부와 사측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KB금융과 국민은행은 지난해 노조위원장 선거에 개입한 계열사 대표와 국민은행 임원의 사표를 수리했다. 노조의 징계 요구를 수용해서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이 노조와 전 직원에게 직접 사과까지 했다. 국민은행은 최근 초과근무수당 추가 지급, PC오프제 도입 등 노조 요구도 대부분 받아들였다. 이 은행의 노조가 연이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윤 회장의 연임 시기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우리은행도 노조의 영향력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은행 노조는 약 5.5%인 우리사주 지분을 무기로 경영 참여를 검토 중이다. 박필준 우리은행 노조위원장은 “과점주주들이 과도한 성과주의를 도입하는 등 무리한 전략을 추진하면 곧바로 이사회에 사외이사 선임 안건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연말 임단협에서 은행 노조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성과연봉제 도입 문제로 사용자 측이 탈퇴하면서 깨졌던 산별교섭의 틀도 복구하기로 했다. 이날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허권 금융노조위원장과 만나 산별교섭 복귀를 전제로 안건과 일정을 논의했다. 금융노조는 산별교섭을 통해 핵심평가지표(KPI) 폐지와 상품판매 프로모션 중단 등 은행 경영과 관련한 요구를 관철한다는 방침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경영방침과 영업 추진방향이 담긴 성과평가지표를 노조가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경영권 침해”라며 “과도한 경쟁을 막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시장에서 경쟁하는 은행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라고 말했다.

노조의 사외이사 선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정부와 여당이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하기로 확정하는 등 노조의 요구에 힘이 실릴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95% 이상의 기업이 주식회사인 한국의 현실에서 노조의 경영개입 요구는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김선정 동국대 법대 교수는 “사외이사는 기업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노조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현일/홍윤정/윤희은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