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중형 선고로, 나라 안팎에서 삼성의 장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창업 79년 만에 ‘오너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삼성을 움직여 온 ‘오너-미래전략실-전문경영인’ 가운데 두 축이 사라졌으니, 그야말로 ‘시계(視界) 제로’다. 미래먹거리를 위한 과감한 투자나 대형 M&A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 계열사 간 시너지도 기대하기 어렵다. 삼성 브랜드도 타격을 입게 됐다. 삼성의 진짜 위기다.

그렇기에 외신들은 전에 없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고 당일(25일) 일본 아사히신문의 호외 발행, CNN의 생중계, 유수 통신사들의 ‘긴급’ 타전이 쏟아졌을 정도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삼성의 글로벌 명성과 장기전략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판결은 반(反)재벌 여론을 의식한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며 “‘톱’ 부재로 대형 M&A와 사업개편 결정이 지연되고 기업 이미지도 상처를 받을 것”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당연히 정경유착은 근절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재판에 오른 혐의가 그런 정경유착에 해당하는지는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기존의 정경유착 사례들도 무소불위 정치와 규제권력에서 비롯됐음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정치풍토에서 정치권 요구를 외면할 수 있는 ‘간 큰’ 기업은 없다. 환골탈태해야 할 것은 기업보다 후진 정치다.

정치권과 대중여론은 “오너가 없어도 사상 최대 실적을 낸다”며 삼성의 불안한 미래를 대수롭지 않게 치부한다. 기업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전문경영인이 오너의 ‘고독한 결단’을 대신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단기 실적주의’ 등 대리인 문제는 모든 기업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졸면 죽는다’는 글로벌 IT기업들의 경쟁 속에 삼성의 리더십 공백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헤지펀드의 공격 가능성도 있다.

삼성은 연 매출 300조원에다 수출의 33%, 증시 시가총액의 약 30%를 차지한다. 그룹 매출의 7할을 점하는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제조기업으로, 개도국은 물론 선진국들도 부러워 한다. 이런 기업이 위축되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기업은 아끼고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