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미래 세대에 짐 지우는 '산타정권'
정치에는 임기가 존재하지만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 정치는 새 진용을 짜서 새 출발할 수 있지만 경제는 그렇지 못하다. 경제를 ‘초기화’할 수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인계받는다. 문재인 정부가 인계받은 한국 경제는 취약하다. 박근혜 정부 4년의 성장률 평균치는 2.95%로, 세계 평균 성장률 3.18%보다 낮다. 신(新)성장동력을 찾는 데 실패했고 구조조정에 실기했기 때문이다.

이념적 지평을 차치하면 문재인 정부가 지향해야 할 정책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저성장 국가로 추락한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고갈된 성장동력을 재충전하고 지연된 구조조정에 시동을 걸어 ‘성장 페달’을 밟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현실 인식은 다른 듯하다. 현실을 직시하고 시장과 소통하는 대신 사전에 입력된 ‘좌파적 DNA’를 정책에 담았다. ‘분배를 통한 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믿음이다. ‘소득주도성장’도 그 파생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방문지는 인천국제공항공사였다. 그 자리에서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첫 방문지에서의 발언은 큰 상징성을 갖는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는 국가의 시장 개입과 큰 정부를 공식화했다. 최근 100일까지의 정책은 그 연장선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총 54조원이 소요되는 아동수당 신설 등이 포함된 5대 복지정책을 확정지었다. 문제는 별도의 복지정책이 문 대통령 발언을 빌려 정책화되고 있는 것이다. 치매 국가책임 선언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가 그 사례다.

문재인 케어는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모든 치료를 급여화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30조원의 추가 재원이 소요되는데, 20조원의 건보 누적 적립금을 이용하고 국고 지원을 늘려 2022년까지 통상적인 건보료 인상 그 이상의 추가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건보 재정이 흑자지만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조만간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중기 재정수지 전망을 통해 2019년부터 적자가 시작될 걸로 예측하고 있다. 문재인 케어를 위해 누적 적립금을 헐어 쓰는 것은 이기적 정책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비급여를 급여화하려면 의료기술 평가를 통해 해당 의료행위가 필수의료임을 보여야 한다. 예컨대 자기공명영상(MRI)을 급여로 하면 수요는 폭발한다. 2006년 6세 미만 아동의 입원비를 전액 의료보험에서 지급하자 가짜 입원 소동이 벌어진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문재인 케어를 발표하면서 2023년 이후 건보 지출 추계를 공개하지 않은 보건복지부 행태는 충격적이다. 건강보험은 ‘그해 걷어서 이듬해 쓰는’ 단기보험인 만큼 2023년 이후 추계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변(辨)이다. 추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끝나는 ‘5년 후는 알 바 아니다’와 다를 바 없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경상성장률 이상으로 재정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재정적자를 공언한 것이다. 증세가 여의치 않으면 국채 발행으로 적자를 메워야 한다. 이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시키는 거대한 도덕적 해이다.

‘큰 정부론’은 ‘국가는 선하고 전지하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를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국가가 박애주의의 실천자가 된다면 모두들 사회적 합의를 통해 특혜를 받으려 할 것이다. 복지가 그 전형이다. 국가로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추가하지 않고서는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한 손으로 무엇인가를 빼앗아 다른 손으로 나눠줘야 한다. 합법적 약탈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모든 생산자원은 개인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국가는 ‘무산국가’이다. 고유 재원을 갖지 않는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환상이다.

국가는 영속적이다. ‘YOLO(you only live once: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 정권, 내 임기만 관심 갖는 산타 정부’가 돼서는 안 된다. 정부가 산타가 되면 누군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 누군가는 미래 세대일 개연성이 높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미래에 짐을 지우는 것만큼 떨쳐 버려야 할 유혹은 없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