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지털 경제, 생태계 확장에 달렸다
올해 1월과 2월에 열린 세계적 정보기술(IT) 행사인 국제가전박람회(CES)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는 인공지능(AI), 가상 및 증강현실, 사물인터넷(IoT) 같은 신기술들이 주목받았다. 이들 기술에 기반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갈수록 고도화될 전망이다. 기술은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이런 변화가 일부 기업에만 영향을 주는 시대는 지나갔다. 새로운 기술은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

지금은 IT를 중심으로 모든 제품, 서비스, 산업의 융합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제조업이 IT의 힘을 빌려 스마트공장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금융은 물론 피트니스산업까지도 IT와 융합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처럼 산업 지형이 급변하는 시기에 기업들은 오히려 본연의 비즈니스에 집중해야 한다. 새로운 IT 기술을 개발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외부 전문 기업에 맡기고 그것을 활용해서 고객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서비스와 가치를 제공할지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례로, 전자 업체인 필립스의 조명사업부는 에너지 서비스 업체인 코플리와 함께 유럽에서 네 번째로 이용객 수가 많은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서비스로서의 조명 시스템(LaaS)’을 제공하고 있다. 조명 기구와 설치물에 대한 소유권은 필립스가 가지고, 시스템 관리는 코플리와 필립스가 공동 책임을 지며, 스키폴 공항은 공항 이용객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용한 만큼만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모든 것을 단일 기업이 제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새로운 산업은 새로운 생태계가 필요하다. 지난해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영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인 ARM은 개방적 생태계에 힘입어 지속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ARM은 모바일 반도체 설계의 핵심인 ‘코어’만 설계해 라이선스하고 칩의 개발과 생산, 판매는 생태계 내의 반도체 회사들이 담당하는 형태다. 이 같은 반도체 설계·생산·판매 생태계에는 1000여 개의 기업들이 협력하고 있다.

기존 기술과 제품으로만 차별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별 조직의 창의성이나 독창성, 역량만으로 변화를 쫓아가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점점 더 많은 기업이 고객과 파트너와의 협력을 통한 혁신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새로운 수익원을 찾고 새로운 경쟁 이점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기 위해 기존 자동차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참여해 힘을 모으고 있다. 구글, IBM, 애플과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과 제휴를 맺고 자율주행차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다.

아이작 뉴턴은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란 말을 남겼다. 누구나 거인이 될 수는 없다. 대신 거인을 활용한다면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업 역량을 외부로 확장함으로써 혁신의 씨앗이 발아할 수 있도록 하고, 이것이 미래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종용 < ARM 코리아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