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보물은 오직 청백뿐"
“우리 집에 보물은 없다. 보물이 있다면 오직 청백(淸白)뿐이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묵계서원에서 10여 분 올라가면 도포 자락을 펼쳐놓은 듯 흰 바위를 타고 흐르는 계곡을 만나게 된다. 세 번씩이나 머금으며 흐르는 계곡 폭포를 건너면 ‘학’의 자태처럼 송암(松巖)을 두른 정자가 나온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82호 만휴정(晩休亭). 정자에는 당호(堂號)와 함께 안동 김씨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선생의 유훈인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이 청풍으로 새긴 듯 걸려 있다.

보백당은 조선 초 문신으로 당대의 인물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과 교유했다. 50세에 과거에 급제해 대사성과 대사간, 대사헌과 홍문관 부제학 등 요직을 지냈다. 연산군 때 도승지 임무를 요청받았지만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맡지 않았다. 이후 시정의 잘못을 논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향해 만휴정을 마련하고 독서와 사색으로 시간을 보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사화(士禍)로 세 번이나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지만, 연산군 폐위 소식을 듣고는 그 과실을 바로잡아주지 못했음을 한탄했다고 한다. ‘내공을 넘어서는 벼슬’을 욕심내지도 않았고,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리며 ‘나는 잘못 없다’고 외치는 염량세태(炎凉世態)와도 거리를 뒀다.

선생은 돌아가실 무렵 자손을 불러 앉히고는 “가문이 전하는 것은 청백이요, 대를 이어 지키는 것은 공경과 부지런함이다. 효도와 우의로 집안의 화목을 가꾸라(家傳淸白, 世守恭謹, 孝友敦睦)”는 유훈을 남긴다. 그러면서 “너희들은 교만하고 경박한 행동으로 가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실추시키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상제례는 오직 정성스럽고 경건하게 할 것이지, 낭비나 허례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나는 경연에 오래 있었으나 임금을 바로잡지도 시세(時勢)를 구하지도 못했다. 살아서 이미 세상에 보탬이 없었으니, 죽어서도 마땅히 검소하게 장사지내고 다만 성명이나 써서 무덤에 표시할 것이지 절대로 남에게 거짓으로 찬미하는 비문을 청해서는 안 된다. 잘한 일도 없는데 명예를 얻는 것은 내가 무척 부끄러워하는 바이다”고 했다. 참으로 서늘한 가르침이다.

올여름, 보백당을 모신 묵계서원과 만휴정을 다시 찾아 그 ‘서늘한 정신’에 더위를 내놓을까 한다. 마침 한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 ‘보물은 오직 청백뿐’이라는 제목으로 안동 김씨 보백당 가문의 ‘기탁문중특별전’이 열리고 있으니, 독자들께서도 피서처로 생각해보시길 권한다.

김광림 <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glkim@n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