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방치된 3~5년차 중소기업
창업이 수월하지만 살아남는 기업은 적다. 3년 후 생존율이 38%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인 스웨덴(75%, 2015년)의 절반밖에 안 된다. 영국(59%) 미국(58%) 프랑스(54%) 독일(52%) 등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다. 생존율이 낮은 것은 창업 시기에 각종 지원이 몰리는 탓이 크다. 정부가 정권 초기 창업을 독려할 때마다 지원금을 노리고 예전 사업계획서를 다시 써먹는 이들도 적지 않다. ‘벤처’로 포장하면 일이 더 쉬워진다. 최근에는 일반인도 참여하는 크라우드펀딩이 유행하고 있고 대학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창업경진대회도 자주 열린다. 창업이 이벤트가 된 셈이니, 모험정신이 아니라 ‘남의 돈’ 창업이 봇물을 이룬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살아남은 3~5년차 기업이 사실상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는 지원이 거의 없다. 올해 창업 3~5년차를 맞은 기업은 9만여 개다.
이들은 소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빠져 있다. 대부분 한계 상황에 몰린 영세 중소기업이다. 창업 초기 동원했거나 지원·대출받은 자원은 이미 고갈됐다. 사장들은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 거래 실적이 적고 신용이 바닥이다. 그나마 기술력이 있는 기업은 신제품을 개발했지만 찍어낼 금형 제작비 수천만원이 없고, 더 열악한 기업은 특허출원할 돈도 없는 게 현실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7년차 정도까지 살아남아 연매출 50억원을 넘기면 사실상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장자금, 해외 진출 자금, 사업화 자금, 신사업연구개발자금 등 정부 지원금도 쉽게 타 쓸 수 있다. 요즘은 ‘벤처대부업’이란 이름으로 비아냥을 듣고 있는 벤처캐피털들도 접근해온다. 그러나 이때까지 살아남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역량과 기회 엮어주는 시스템을
언제 망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며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고 그 백척간두에서 도전하는 기업들이 바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중소기업들이다. 3년을 버티며 살아남은 중소기업이라면 분명 한두 가지 장점은 있다. 비즈니스 모델이 좋거나 사업 역량을 갖추고 있거나 아니면 특별한 기술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이들이 잘 모르는 사업 기회가 글로벌 시장에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업 성과가 아직 미미하기 때문에 성장이 안 되는 것이다.
말 잘하는 벤처가 아니라 이미 시장에서 기본적인 검증을 받은 이들 기업 가운데서 미래의 삼성, 현대가 나오고, 히든챔피언도 탄생한다. 이들 기업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자산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정부는 창업 숫자에 연연하는 자세를 버리고 창업 초기에 집중된 지원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창업을 하기 쉽게 하되 지나친 금전적 지원은 줄여가야 옳다. 정부가 창업 초기를 견디고 살아남은 3년 이후 기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틀면 금융회사의 관행도 바뀔 것이다.
다행히 최근 민간 부문에서 이들 중소기업의 역량과 사업 기회를 연결해주려는 움직임이 있다. 곧 출범할 중소벤처기업부가 이 분야에 관심을 쏟아주길 기대한다. 약자 보호가 아니라 강자 육성!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