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의 역설
문재인 정부가 두 달째 지지율이 70%대 고공행진인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먼저 ‘무엇을(what)’ 손댈지 고르는 아젠다 세팅에 능하다. 비정규직 철폐, 통신비 인하, 탈(脫)원전 등 여론이 반길 만한 이슈들부터 속속 내밀었다.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왜…”라는 반응이 쏟아진다.

하지만 ‘어떻게(how)’로 들어가면 얘기가 확 달라진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신규 채용 절벽, 정규·비정규직 간 갈등을 초래할 것이다. 통신비 인하는 투자·서비스 부실화를, 탈원전은 전력수급 불안과 전기료 인상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그래도 밀어붙이는 건 ‘남는 장사’여서일 것이다. 인기는 ‘현찰’이지만 부작용은 빨라야 1~2년 뒤, 길게는 차기 정권이 고민할 ‘어음’이다.

아직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뿐, 이런 ‘현찰 공약’이 금융에도 있다. 대부업의 법정 최고금리 인하다. 현재 연 27.9%에서 이자제한법상 상한인 연 25%로 일원화하고, 3~4년 내 연 20%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내달 발표할 가계부채 종합대책에 포함될 예정이다.

서민 이자부담을 줄이고 재활을 돕는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이자도 ‘가격’인 만큼 최고금리 강제 인하는 또 다른 가격통제다. 경쟁시장에서 가격통제가 과소 공급을 초래한다는 점은 경제의 상식이다.

그간 동향을 보면 결과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최고금리가 2002년 연 66%에서 2011년 연 39%로 낮아지는 동안엔 대부업이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시장 파이가 커졌다. 그러나 작년 3월 추가 인하(연 34.9%→27.9%)부턴 판이 바뀌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등록 대부업자가 작년 하반기에만 326개(3.6%) 사라졌다. 대부업 거래자수도 250만 명으로 6개월 새 13만 명(4.9%) 줄었다. 대형 대부업체(자산 100억원 이상) 대출총액은 5년 만에 감소세다.

반면 1인당 평균 대출잔액은 2015년 말 494만원에서 작년 말 586만원으로 더 늘었다. “금리가 낮아지면 빚을 줄이기보다는 이자부담이 줄어든 만큼 돈을 더 빌리는 게 대부시장 고객의 특징이다.”(A대부업체 사장)

대부업계는 연체 위험이 큰 저신용자(7~10등급) 대출 기피가 뚜렷하다. 20%대이던 대출 승인율이 작년 4분기 14.4%로 뚝 떨어졌다. 대출 신청자 7명 중 6명은 못 빌렸다는 얘기다. 대형업체는 박리다매로 버텨도 작은 업체들은 폐업 또는 사금융 쪽을 기웃거린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더 내릴 수 있다고 압박한다. 최고금리 인하를 위한 대부업법 개정안만도 10여 건이 발의돼 있다. 대부업을 ‘약탈적 이익’으로 간주해 다수를 위해 이익을 헐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업계는 임계점에 왔다는 반응이다. 연 25%로 낮춰도 신규 대출이 어렵고 연 20%면 사업을 접을 판이라고 한다. 심지어 산와머니 등 일본계 자금 철수설도 돈다. 일본의 대부업 최고금리는 연 15~20%이지만 조달금리가 1%대인데 국내에선 6%대다. 같은 조건이면 일본에서 사업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금리통제로 ‘금융약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란 기대는 ‘천진난만’한 발상이다. 대부업 이용자의 77%가 7등급 이하다. 최고금리를 낮추면 서민 이자부담이 줄어야 할 텐데 실상은 정반대다. 자금 공급이 줄고, 고객층은 4~6등급으로 바뀔 뿐이다. 저신용자가 제도권 막차인 대부업에서도 못 빌리면 남는 건 불법 사채(私債)뿐이다.

지난 15년간 양성화 노력 끝에 14조6000억원 규모의 대부업 시장이 ‘금융 약자’의 돈줄이 됐다. 이런 역할은 재정으로 감당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정책 입안자 중에는 대부업을 죄악시하고, ‘이익=폭리’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금융 약자’ 대책은 면밀한 행동분석과 세심한 안전망을 전제하지 않고선 시장만 왜곡한다. 게다가 금융은 날계란과 같아서 아주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깨져버린다. 섣부른 가격통제는 늘 시장의 복수를 불렀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