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당신을 위한 꽃노래
이화여대 동산이 내려다보이는 학교 앞 카페 3층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는 버나드 쇼의 말이 실감 나는 6월의 한낮,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그때 있던 것 중 지금은 없는 것들이 그리워진다.

최루탄 연기 가득한 길가에서 빅토리아, 미뇽, 파리 등의 클래식다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딴 세상이었다. 그렇게 조용한 세상으로 도피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던 내 젊음은 간데없고, 대신 꿈도 꿀 수 없던 자유와 풍요가 어디나 널려 있다. 신기한 것은 요즘 청춘들은 저 넘쳐나는 자유 속에서도 갈 곳도 구경할 것도 없던 그때의 우리보다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어쩌면 사소한 것들은 매 순간 진화하지만 전쟁이나 평화, 이념같이 커다란 것들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기는커녕 지구상 모든 곳이 전쟁터가 됐다.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진화하지 않은 게 있다면 그건 증오가 아닐까. 문득 “중요한 것은 침묵된다”고 말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글이 떠오른다. “증오는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21세기에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념이나 인간의 헛된 이상을 죽여야 한다.”

언젠가 우연히 만난 후배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쿠바에 가서 피델 카스트로 무덤에 갔다 왔다고 했다. 외국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실현한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발전이라는 면에서는 성공했다 할 수 없는 남의 나라 대통령이 그리 위대해 보이는 건 왜일까. 쿠바의 바티스타 독재 정권에 불만을 품고 혁명에 뛰어든 카스트로는 “혁명 안에 모든 것이 있고 혁명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역설하며 공산주의 이념 아래 49년을 통치했다. 영원한 혁명가로 젊은이들의 가슴에 남은 체 게바라가 저승에서 보고 있다면 꾸짖을 일도 많을 것이다. 현실은 늘 꿈보다 느리기에. 쿠바 교과서에 카스트로가 혁명 영웅으로 남을지 독재자로 남을지 궁금해진다.

이제 와 2017년에 그게 촛불이든 횃불이든 혁명이라는 단어가 낯설 게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개인의 삶도, 나라의 운명도, 그 모든 것이 축적된 역사도 평면이 아니라 고도로 복합적인 다차원적 입체다. 그 어떤 것도 다 옳거나 다 그른 것은 없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이렇게 시작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비극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나가자던 우리 세대의 향수를 자극한다. 과연 우리의 꿈은 진화했을까. 우리에게 가장 오래 각인된 노래가 있다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 것이다. 요즘 북한에서는 금지곡이라는 이 노래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몹시 현대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 노래들을 떠올리는 차에 낯익은 팝송 ‘샌프란시스코’가 흘러나왔다. 1967년 미국 몬터레이축제에 세계 각국 수만 명의 젊은이가 모여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는 걸 잊지 마세요” 하는 노래를 부르며 반전과 평화를 외쳤다. 워싱턴DC에서 펜타곤을 향한 반전행진시위대가 연방군에 포위됐을 때 배우 조지 해리스는 군인이 들고 있던 총구멍에 꽃을 꽂아 줬다. 이 노래는 전쟁을 반대하는 상징적인 주제가가 돼 1968년 체코의 민주자유화운동인 ‘프라하의 봄’ 때 널리 불리기도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두운 지난날은 다 마음에 묻고 우리도 경쾌한 꽃노래 하나 불러보자고.

황주리 <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