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하고 진통 끝에 외교부 장관이 임명됐지만 한국 외교는 고립무원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중·일 등 주변국은 물론 북한으로부터도 외면당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미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나 사드 문제에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북한과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필요 없고, 전제 조건 없는 대화를 말한 적이 없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6·15 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한다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했던 것과는 상당한 온도 차이가 느껴진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한과의 대화는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며 “나의 대북 정책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고도 했다. 사드 환경영향 평가가 사드 취소나 철회를 의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북핵 해법과 사드 등에서 그간 불거져 온 양국 간 불협화음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리 조율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웜비어 사망 이후 대북 강경 기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미국의 반응은 싸늘하다. 미 의회 상·하원 주요 인사들이 일제히 북한에 대한 응징을 요구하고 나섰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장은 “사드 배치를 늦추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의 사드 압박은 여전하다. 20일 열린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에서 “한·중 관계를 제약하는 주요 장애물이 아직 제거되지 못했다”며 정치적 결단을 요구했다. 대일 관계 역시 문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 재협상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함에 따라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북한은 21일 “대화하겠다면서 국제 제재 압박 공조를 떠드는 건 대화를 않겠다는 것”이라며 문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북한이나 사드 문제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금 이런 태도는 ‘오락가락 외교’로 비칠 뿐이다. 실리도 못 챙기고 국제사회에서 ‘왕따’되기 십상이다. 외교는 신뢰가 기반이다. 신뢰는 일관된 원칙에서 나온다. 좀 더 분명한 외교 원칙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