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치러진 21일 서울 연세대 백양관으로 응시자들이 들어서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제59회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치러진 21일 서울 연세대 백양관으로 응시자들이 들어서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좋든 싫든 ‘고시생 아빠’의 삶도 이걸로 끝나겠지요.”

21일 마지막 사법시험이 치러진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 15년간 아들의 수험생활을 뒷바라지해온 박모씨(62)가 회한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32도. 박씨는 푹푹 찌는 더위에 연신 땀을 닦아내면서도 땡볕을 고집했다. 경북 군위에서 아들과 함께 고속버스로 올라왔다는 그는 “20대 청춘을 고스란히 바친 아들이 안에서 마지막 시험을 치르는데 혼자 편하게 있으면 부정 탈까 봐 그늘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예고됐지만 나라에 야속한 마음”

'희망 사다리' 사법고시, 54년 만에 역사 속으로
2만여 명의 법조인을 탄생시킨 사법시험이 59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날 연세대 백양관 앞에는 박씨를 비롯한 10여 명의 학부모들이 애타는 심정으로 시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묵주를 매만지며 기도문을 외는 한 수험생 어머니도 보였다. 시험에 응시한 186명(1교시 기준) 가운데 50명만이 법조인으로 선발된다.

박씨 아들은 서울의 명문 사립대를 나왔다. 대학 때 1차에 합격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10년 넘게 2차 시험의 관문을 넘지 못했다. 결국 2012년에 낙향했지만 그 뒤로도 사법고시를 놓지 못했다. 박씨는 “아들의 인생 절반을 건 시험인데 원껏 준비하도록 지원해 주지 못한 게 후회된다”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다른 수험생 어머니 이모씨(53)는 딸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의 딸 최모씨(31)는 어릴 때부터 판사를 꿈꿨다. 법대 졸업 후 집안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로스쿨 진학 대신 사법시험을 택했다. 그러나 몇 차례 낙방한 뒤 사법시험 폐지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씨는 “딸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예고된 폐지이긴 하지만 나라에 야속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마지막 사법고시 2차시험은 이날부터 24일까지 연세대 백양관에서 치러진다. 지난해 1차 시험 합격자 중 2차 시험 불합격자가 대상이다.

◆54년 만에…‘아듀 사법시험’

사법시험은 1947~1949년 ‘조선변호사시험’, 1950~1963년 ‘고등고시 사법과(사법고시)’로 시행되다가 1963년 ‘사법시험령’ 제정과 함께 현재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지난 반세기 동안 ‘희망의 사다리’로 여겨졌다. 지역·성별·학력 차별 없이 오로지 시험 성적만으로 당락이 가려졌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17회)과 문재인 대통령(22회)은 나란히 사법시험을 거쳐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국가 수반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고시 낭인’이 양산되고 ‘기수 문화’에 따른 각종 병폐가 발생하면서 폐지라는 운명을 맞았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로스쿨법)’을 제정했고 2009년 전국 25개 로스쿨이 문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사법시험 부활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해 사법시험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사법시험을 존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나온다. 이종배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대표는 “로스쿨은 재정 부담 등 진입 장벽이 존재하고, 학사 관리의 투명성도 의심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더 이상 사시 존치 문제로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로스쿨 제도 개선 보완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성수영/이상엽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