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향기] 브랜드 스토리 (2) 브랜드 스토리, 1875년 여행용 트렁크서 출발…세계가 사랑한 모노그램 패턴
1835년 열네 살이던 루이 비통(Louis Vuitton)은 스위스 작은 마을 앙셰를 떠나 파리로 건너갔다. 상자 제작자였던 로맹 마레샬의 도제공으로 일하면서 루이 비통은 상자와 트렁크를 만드는 법을 익혔다. 긴 코트와 드레스를 넣을 수 있는 커다란 상자 등 까다로운 제작법을 배운 그는 185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매장을 열었다. 프랑스 명품의 대명사 ‘루이비통’의 시작이었다.

여행가를 위한 가방

[명품의 향기] 브랜드 스토리 (2) 브랜드 스토리, 1875년 여행용 트렁크서 출발…세계가 사랑한 모노그램 패턴
루이비통의 역사는 곧 여행의 역사기도 했다. 여행용 트렁크에서 출발한 루이비통은 내구성이 강하고 가벼운 여행가방을 제작하는 데 공을 들였다. 대부분의 초창기 고객은 루이비통의 섬세한 여행용 가방에 매료됐다. 각진 형태의 커다란 트렁크는 내구성에 중점을 뒀다. 그러면서도 잠금장치, 모서리 포인트, 이니셜 각인 등 디테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1875년에는 세로로 세울 수 있는 최초의 워드로브 트렁크(옷장 트렁크)를 내놨다. 멀리 떠날 때도 옷이 구겨지지 않는 트렁크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상류층 사이에서 루이비통 트렁크 하나쯤은 필수품이 됐다. 창립자의 아들 조르주 비통과 손자 가스통-루이 비통으로 내려가면서 루이비통의 역사는 곧 여행의 역사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다양한 트렁크와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노그램 패턴 제품 등을 끊임없이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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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루이 비통이 개발한 텀블러 잠금장치는 브랜드 입지를 더 공고히 했다. 소중한 물건을 잘 보관할 수 있고, 자신의 이니셜과 고유번호를 담은 열쇠와 자물쇠를 소장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소비자는 열광했다. 하나의 열쇠로 자신이 갖고 있는 루이비통 트렁크 여러 개를 다 열 수 있게 제작해준 점도 인기 비결이었다. 모노그램 패턴이 처음 나온 1896년 이후부턴 더 많은 소비자에게 퍼져나갔다. 모노그램 패턴의 여행용 가방을 다들 갖고 싶어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과거 시대상을 한눈에

루이비통은 여행이라는 분명한 콘셉트를 가진 명품 브랜드로 꼽힌다. 지난 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Volez Voguez Voyagez)’ 전시회를 시작한 것도 자신들의 역사와 브랜드 콘셉트를 알리기 위해서다.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함으로써 브랜드 역사와 정통성, 예술성을 보여주려는 취지다. 시대별로 변화해온 트렁크의 디자인과 소재 등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당시 문화를 알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빈티지 제품이다. 1867년 마 캔버스 소재로 만든 커다란 트렁크, 1890년 줄무늬 캔버스, 목재로 제작한 트렁크, 내용물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 칸마다 숫자를 새겨넣은 1895년도 트렁크 등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옛날 제품이 모두 전시돼 있다. 1906년에 제작된 여행용 트렁크, 1910년 만든 꽃을 담는 트렁크도 빈티지한 멋이 있다. 특히 책상처럼 펼쳐지는 1932년도 트렁크는 모로코가죽과 모노그램 캔버스, 소가죽, 목재, 활동, 천과 페인트 등으로 제작된 제품이다. 미국 외교관이던 앤서니 J 드렉셀 비들 주니어 부인이 주문한 70개의 가방 세트 중 하나로 이번 전시회를 위해 공수해왔다.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책상, 셔츠 등 옷과 네 켤레의 신발을 넣을 수 있는 서랍, 모자 자갑 부채 리본 등을 담을 수 있는 수납칸으로 구성돼 있다.

예술적 가치 담은 작품들
[명품의 향기] 브랜드 스토리 (2) 브랜드 스토리, 1875년 여행용 트렁크서 출발…세계가 사랑한 모노그램 패턴
무엇보다 기차, 요트, 비행기, 자동차 등 시대별 여행수단에 따라 달라진 트렁크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기차 윗칸에 넣기 좋은 둥그런 형태의 키폴 가방은 지금까지 인기를 끄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또 와인병과 와인잔을 담는 트렁크, 책과 타자기를 넣고 다니던 문학가들의 트렁크, 드레스와 구두를 담고 다니던 상류층 여성들의 트렁크 등 특화된 제품도 인상적이다. 헤밍웨이가 사용했던 데스크 트렁크, 프랑스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을 위해 맞춤 제작한 트렁크,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여행가방 등도 전시돼 있다. 칼 라거펠트, 카와쿠보 레이, 마크 뉴슨, 크리스찬 루부탱, 프랭크 게리, 신디 셔먼,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다양한 디자이너, 예술가와의 협업 제품도 한데 모아놨다.
[명품의 향기] 브랜드 스토리 (2) 브랜드 스토리, 1875년 여행용 트렁크서 출발…세계가 사랑한 모노그램 패턴
한국 소비자를 위한 특별 전시품도 공개했다. 전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 김연아에게 기증한 스케이트 트렁크는 제작에만 9개월이 걸린 작품이다. 빙상을 연상케 하는 아이보리 색 에피 가죽으로 만든 캐리어는 김연아가 선택한 블루 아주르 색으로 안감을 제작했다. 또 국립국악원이 프랑스 필하모니 드 파리 산하 음악박물관에 기증한 가야금을 전시했다. 이 전시를 위해 가야금 트렁크를 특별히 제작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바이올린, LP판, 지휘봉, 기타 등을 넣고 다닐 수 있는 맞춤 트렁크 등 다양한 제품을 감상할 수 있다. 루이비통 관계자는 “브랜드의 콘셉트와 정통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회는 그 자체가 곧 브랜드 역사”라며 “예술가들을 존중하고 여행가를 위한 맞춤 가방에 공들였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무료로 공개되는 이번 전시회는 8월27일까지 열린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