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한국은행은 25일 새 정부 출범 후 열린 첫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로 동결했다. 금통위원 만장일치였다. 금리 동결은 11개월째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오는 7월 기존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할 수 있다”고 언급할 정도로 성장 회복세에 자신감을 나타냈지만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가시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외 변수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주열 "경기 회복세 뚜렷…성장률 전망치 7월에 상향조정할 수도"
뚜렷해진 경기 회복세

한은은 세계 경기 회복세를 발판으로 한 수출 호조로 국내 경제 성장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 회의 직후 간담회에서 “국내 경제는 소비 증가세가 여전히 미흡하지만 수출과 투자가 개선돼 성장세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성장 흐름이 예상한 경로를 웃돌 것이란 설명도 내놨다. “7월 경제 전망 땐 당초 예상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2.6%)를 상향 조정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한은은 지난 4월 경제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6%로 0.1%포인트 높여 잡았다. 경기 회복 신호는 수출·생산·투자 모두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올 5월 수출(1~20일)은 최장 연휴 기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4% 증가했다.

한은의 올해 전망치(1.9%) 수준에 부합하고 있는 소비자물가는 국제 유가 하락으로 공급 측면에선 낮아지고 있지만 수요 측면에서 상승 압력이 생겼다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이 총재는 “현재 금리 수준은 충분히 완화적”이라며 “일자리 창출이나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미시적 정책으로는 재정정책의 활용 필요성이 높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미 추가경정예산 편성안을 이번 6월 임시국회 내 제출하도록 기획재정부에 당부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도 재정정책 강화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불어난 가계 빚·경제정책이 관건

하지만 좀체 줄지 않는 가계부채가 고민거리다. 올 1분기 동안 가계 빚은 17조원 넘게 늘어 3월 말 기준 1360조원에 육박했다. 사상 최대치다. 이와 관련, 이 총재는 “은행과 비(非)은행 모두 가계대출이 줄었지만 예년 증가 규모에 견줘보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꺾였다고 확언하기 이르다”고 진단했다. “현재 증가세가 계속되면 통화정책에도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한은이 금리를 올리면 차입자가 내야 할 이자가 늘어 국내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한계가구와 한계기업의 도산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면서 민생 안정과 서민 보듬기에 나서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과 상충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기만도 어렵다.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 차는 0.25~0.50%포인트까지 좁혀져 있다. 6월 이후 미국이 금리를 두 차례 0.25%포인트 더 올리면 올 하반기에는 한국보다 높아진다는 얘기다. 여기에 미국 중앙은행(Fed)이 연말께 보유 자산 축소까지 단행하면 외국인의 국내 주식·채권 투자 자금 이탈이 이어질 수도 있다.

복합적 요인이 맞물려 금리 동결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은이 과거 금리를 동결한 최장 기간은 2009년 2월부터 2010년 6월까지 16개월이다. 한은이 연내 금리를 조정하지 않으면 최장 기간 동결 기록을 다시 세우게 된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는 데다 새 정부가 이미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적극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한은의 통화정책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