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거대기업 코카콜라, 어떻게 스타트업처럼 움직이나
수년 전 코카콜라는 일본에서 생수 브랜드 ‘미나쿠아’의 시장점유율 하락에 고심하고 있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도쿄에 모인 브랜드 디자인팀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좁은 도쿄에서는 빈 물병과 같은 쓰레기가 차지하는 공간이 큰 문제였다. 재활용은 권장사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다.

[책마을] 거대기업 코카콜라, 어떻게 스타트업처럼 움직이나
2009년 코카콜라는 일본에 특화된 새 생수 브랜드 ‘이로하스’를 내놨다. 이로하스는 얇은 플라스틱 병을 채택해 다른 병보다 무게가 40% 가벼웠다. 손으로 쉽게 구겨 부피를 줄일 수 있어 재활용 쓰레기통에서 생수병이 차지하는 공간이 대폭 줄었다. 구길 때 재밌는 소리도 났다. 플라스틱을 적게 사용해 탄소배출량을 줄여 지구 환경을 배려했다는 사실도 적극 홍보했다. 이로하스는 출시 6개월도 안 돼 두 자릿수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

코카콜라는 130년 동안 끊임없이 성장해 200여 개 국가에서 10억달러 브랜드 17개를 보유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코카콜라의 글로벌 디자인부문 부사장을 지낸 데이비드 버틀러는 《규모와 민첩성을 연결하라》에서 코카콜라가 규모를 키우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한 비결로 ‘디자인’을 지목한다. 그는 “디자인이란 로고, 색상, 포장 용기 같은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요소를 의도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코카콜라는 디자인 전략을 재설계해 회사 전체 시스템을 개선하고 비전을 만들었다. 저자는 코카콜라의 디자인 경영 사례를 통해 성장하는 기업의 조건을 탐구한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기업이 생존하려면 규모와 민첩성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규모는 본질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사업을 키우는 능력이다. 민첩성은 끊임없이 변하는 시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신속히 적응하는 재능이다. 대기업은 전문지식, 브랜드, 유통망 등을 통해 쉽게 확장하지만 문제는 민첩성이다. 반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며칠 만에 새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할 정도로 빠르지만 규모의 경제를 통해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코카콜라는 1886년 설립 당시 대다수 스타트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창업자는 성공 열망이 가득했지만 자본이 거의 없고 여러 가지 경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코카콜라는 규모를 키우기 위해 단순화, 표준화라는 통합 시스템을 디자인했다. 이 덕분에 어느 지역에서나 동일한 맛과 품질을 유지하고, 해외시장으로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1923년 제작된 로고는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유리병은 모든 사람이 알아보는 명물이 됐다. 저자는 특히 코카콜라를 첫 출시한 이후 1959년까지 5센트로 고정한 가격 정책은 매우 혁신적인 브랜드 구축 전략이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표준화로 성장을 이룬 또 다른 기업으로 월마트를 예로 든다. 월마트는 1960년대부터 작은 골판지 상자에서 컨테이너까지 표준화해 관리했다. 제품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공간을 차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지게차, 컨베이어벨트, 포장 기계의 규격화를 이룬다.

그러나 민첩성은 다른 문제다. 코닥은 1세기 동안 사진에 관한 한 최고 브랜드였다. 2001년 사진 공유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오포토’를 매입했지만 인스타그램처럼 키우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더 민첩했던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지 2년 만에 10억달러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코카콜라의 디자인 경영은 최근 10년 동안은 민첩성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코카콜라는 환타, 스프라이트 같은 탄산음료에서 커피, 주스, 생수, 에너지음료까지 브랜드를 확장했다. 중남미에서는 상점 주인들이 비좁은 공간에 코카콜라 제품을 진열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디자이너들은 코카콜라 제품임을 쉽게 인지시키면서,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각 매장에 필요한 형태로 조합을 바꿀 수 있는 판매대를 설계했다. 이 모듈식 판매대를 각 상점에 설치한 뒤 판매량은 25% 증가했다.

코카콜라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쉽게 덧붙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디자인팀은 모든 사람이 디자인에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모듈 시스템인 ‘디자인 머신’을 개발했다. 디자인 머신은 누구나 쉽게 디자인을 창조하고 공유할 수 있는 웹 기반의 저작 도구다. 전통적 방식으로 포장 용기를 현지에 맞게 디자인하려면 몇 주일이 걸리지만 디자인 머신을 이용하면 몇 분 만에 끝난다. 디자인 머신은 200여 개국에서 3만5000명이 넘는 사용자가 참여해 1억달러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다. 코카콜라는 개방형 디자인 시스템을 통해 세계 각 지역 상황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유연성과 민첩성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저자는 “소수 집단에만 의존해서는 시스템적 사고를 할 수 없다”며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고 디자인에 익숙해져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