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주요 정책을 국무회의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업무지시’ 형식으로 내놓고 있는 데 대해 ‘권한 남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감사원법에 규정된 절차를 모두 무시하고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직접 지시하는 것은 법을 무시한 것”이라며 “대통령 업무지시 형태로 내려지는 일방적 명령이 정상적인 국정 운영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야당과의 건강한 협치를 원천적으로 막는다”고 말했다. 국민의당도 지난 22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청와대는 대통령 업무를 보좌하는 기구지 정부부처에 업무를 지시하는 상급 기관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후 2주 동안 여섯 차례 업무지시를 내렸다. 1호 업무지시인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시작으로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및 5·18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검찰 ‘돈봉투 만찬’ 사건 감찰을 지시했고, 여섯 번째로 4대강 사업 정책 감사 및 4대강 보 상시 개방을 지시했다.

일방적으로 하달되는 업무지시가 시스템에 의한 국정 운영을 방해하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일을 급하게 처리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야당 주장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과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과도기적 조치로 업무지시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장관들이 각 부처를 이끌고 있고, 국무총리를 비롯한 새 정부 내각 인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내려야 한다는 얘기다.

대통령 업무지시의 법적 강제력이 약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미국 대통령의 권한인 행정명령은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갖지만 한국 대통령의 업무지시는 부처 업무에만 적용된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업무지시는 ‘대통령 지시사항 관리지침’에 따라 국무총리실이 관리·점검하고 해당 부처의 장은 추진 상황을 보고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