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후보가 내놓은 복지 공약의 핵심은 기초연금 확대다. 현재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 국민연금 수령액에 따라 월 10만~20만원이 지급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안철수 국민의당, 홍준표 자유한국당, 유승민 바른정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대상과 시기 차이는 있지만 기초연금을 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문, 안, 심 후보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도 없애 국민연금 수령액에 상관없이 기초연금을 일괄 지급하겠다고 했다.

기초연금 확대에 대해 찬반 여론은 팽팽하다. 찬성 측은 노인 인구의 50%에 가까운 노인빈곤율을 근거로 든다. 기초연금을 인상해 노인빈곤율을 낮춰야 한다는 논리다. 노인들이 받는 국민연금(노령연금 기준 1인당 월평균 36만원)이 최저생계비(약 62만원)에 미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점에서 국민연금 수령액을 이유로 기초연금을 깎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반론도 만만찮다.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주요 후보의 공약을 실현하려면 올해 기초연금 예산(10조6000억원)보다 2~3배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추정이 나온다.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기초연금 확대 공약을 포기하거나 다른 사회복지 지출을 줄여 기초연금에 쏟아부어야 한다.

형평성도 논란거리다. 국민연금은 미래세대에서 현재 노인세대로,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으로 소득을 재분배하는 효과가 있는데 대상자 모두에게 동일한 기초연금을 주면 이런 효과가 희석된다는 지적이다.

찬성 - 노인빈곤율 45%…OECD의 세 배...기초연금 깎는 '나쁜 장치' 없애야

'연금 때문에 재정파탄' 주장은 공포 마케팅

외국 학자들이 가끔 한국의 악명 높은 노인빈곤율에 대해 물어볼 때가 있다. 50%에 가까운 노인빈곤율 수치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참으로 곤혹스럽다. 틀린 수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 규모 기준 세계 10위권 국가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의 부끄러운 수치다.

65세 이상 중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하는 기초연금은 높은 노인빈곤율을 낮춘다는 명분으로 도입됐다. 월 연금액은 박근혜 정부에서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됐다. 기초연금 인상에 따라 노인빈곤율은 2014년 47.2%에서 2015년 44.7%로 2.5%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노인빈곤율 12%에 비하면 여전히 세 배 이상 높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에 대해 두 개의 ‘나쁜’ 장치를 만들어놨다. 하나는 해마다 재산정하는 기초연금액을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값) 연동에서 물가 연동으로 바꾼 것이다. 물가 인상률이 A값 인상률보다 낮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기초연금 가치가 유명무실해지는 구조다.

다른 하나는 국민연금액이 많으면 기초연금을 감액하는 장치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액이 한 달에 약 31만원이면 기초연금 20만원을 받지만, 국민연금액이 41만원을 넘으면 기초연금은 10만원밖에 받지 못한다.

국민연금액이 풍족할 정도로 많으면 이런 장치를 도입한 사정을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지금도 최저생계비에 대부분 미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정상적으로 직장을 다닌 사람의 국민연금액이 1인 가구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친다는 것은 대부분 연구에서 확인됐다.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이 ‘20만원의 기초연금이 너무 많으니 10만원만 받으라’는 정부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더 납득하기 힘든 것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오래 낼수록 기초연금액이 깎이는 구조다. 성실하게 보험료를 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꼴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민연금을 너무 깎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연금을 더 받으려면 보험료를 내는 기간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하지만 보험료를 오래 낼수록 기초연금이 깎인다는 사실을 알면 국민연금에 대한 장기가입 유인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국민연금을 도입한 목적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장치인 것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중복 지급하면 막대한 돈이 들어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연금에만 수백조원의 재정이 들어가 정부 재정이 파탄날 수 있다는 식의 언급도 있다. 그러나 연금지출 총액의 적정성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판단하는 것이 학계와 국제기구의 표준이다. 단순히 ‘몇백조원이 들어간다’는 식으로 적정성을 평가하지 않는다.

2060년이 되면 한국의 노인 비중은 42%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다. 그러나 2060년 국민연금의 GDP 대비 지출액은 6~7%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초연금을 더해도 GDP 대비 10% 수준을 넘지 않는다. 유럽 선진국은 노인 인구 비중이 13% 수준이었던 2000년대 초반에 연금으로만 GDP의 10%가 넘게 지출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으로 재정이 파탄나고,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식의 주장은 과도한 ‘공포 마케팅’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도입한 목적은 노인 빈곤 방지에 있다. 국민연금으로 최저 수준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데, 이를 핑계로 기초연금을 삭감하는 것은 공적연금을 만든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새 정부에서는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반대 - 기초연금 늘리면 재정부담 급증...미래세대·다른 취약계층이 '피해'

선거 때마다 '퍼주기 공약'…사회복지 물 흐려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대선후보들은 승리를 위해 다양한 공약을 수없이 제시하고, 이를 철저하게 지킬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대선후보들은 이번에도 앞다퉈 사회복지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대선후보들이 사회복지 확대에 집중하는 이유는 낮은 사회복지 수준에 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수준이 선진국의 절반에서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보니 사회복지 확대 공약은 국민적 호응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회복지 공약 중 대표적인 것은 기초연금 확대다. 대선후보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지급 대상을 늘리고, 연금액을 올린다는 내용은 공통적이다. 일부 후보의 공약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액과 관계없이 지급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 공약은 두 가지 이유에서 좀 더 신중해야 한다. 하나는 사회복지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복지 재정의 합리성과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사회복지의 핵심 원칙은 ‘가장 취약한 계층에 우선적인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초연금 대상을 기존 ‘65세 이상 중 소득 하위 70%’에서 더 늘리고, 지급액도 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은 장애아동이나 의료빈곤층, 차상위계층 등 정말 취약한 계층보다 먼저 배려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연금액을 고려하지 않고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누구를 지원하고, 얼마나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기준을 왜곡할 것이다.

다음은 재정 문제다. 무리한 복지 공약은 급격한 재정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재원 조달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0% 수준이다.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도 향후 10년 동안 두 배 이상 급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이르게 된다.
새 정권은 재원 부족이라는 현실과 공약을 이행하라는 압력 사이에서 한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이다. 정부 출범 뒤 사회복지 재정 확보가 어렵게 되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공약을 포기하거나 다른 예산을 줄여야 한다. 공약을 지키지 못할 경우 공수표를 날린 정권이라는 불신에 시달릴 것이다.

반대로 재정 규모를 정상적으로 확대하면서 기초연금 공약을 지키려면 다른 사회복지 영역 재정을 줄여야 한다. 이 경우 기초연금 확대가 노인에게는 복지이지만 다른 취약계층에는 반(反)복지가 될 것이다. 결국 무리한 복지 공약은 형평성과 합리성에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사회복지에 대한 철학이 정치권에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동안 사회복지에 대한 철학의 부재는 사회안전망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과 불신을 초래했다. 정치권이 선거 때마다 정권에 집착해 마구잡이식 정책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이 탓에 국민들은 사회복지를 집단이기주의 정도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사회를 건전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데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정치권은 이제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 분배와 효율 사이에서 객관적인 자세를 찾고, 이를 사회복지 공약에 반영해야 한다. 사회복지의 건전성을 높이고, 그 가치를 모든 국민과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치가 사회복지를 선거 수단으로 이용할 때 그 대가는 정치의 사회복지 종속화로 나타날 것이다.

김일규/은정진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