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대선후보 단일화는 세 번 있었다. 모두 야권 후보 단일화였다. 야권에 두 번의 승리를 안겼다. 한 번은 후보 단일화엔 성공했지만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단일화의 원조는 1997년 대선 때 이뤄진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이다.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그해 11월3일 단일화에 합의했다. 대선 46일 전이었다. 조건은 내각제 개헌과 공동정부 구성이었다. 대선후보는 김대중 후보가 맡고 차기 정부 총리는 김종필 총재가 맡기로 합의했다.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DJ 측)과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김용환 전 자민련 수석부총재(JP 측)가 창구였다. 정통 보수당과의 연대에 신한국당을 탈당한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출마(19.2% 득표)에 힘입어 승기를 잡은 DJ는 결국 끝까지 리드를 지켜 승리했다.

2002년 대선은 단일화로 승패가 갈렸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의 단일화로 전세를 뒤집었다. 역전승이었다. 노 후보는 단일화 전인 그해 11월 중순까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줄곧 밀렸다. 노 후보는 대선을 24일 앞두고 이뤄진 단일화를 통해 3%포인트 이상 앞서기 시작했고, 결국 2.3%포인트 차(48.9% 대 46.6%)로 승리했다.

2012년 대선은 야권 후보단일화가 이뤄졌지만 대선 승리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해 11월 3주차 갤럽 조사에서 박근혜 후보는 39%의 지지율로 1위를 달렸고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각각 23%, 20%를 기록했다. 안 후보가 대선을 26일 앞둔 11월23일 전격 사퇴하면서 단일화가 성사됐다. 2, 3위 후보 지지율을 합하면 박 후보에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막상 단일화가 이뤄지자 표심이 변했다. 박 후보가 단일화 후 조사에서 여전히 3%포인트 이상 앞섰다. 결국 박 후보는 단 한 차례의 역전도 허용하지 않고 3.6%포인트 차(51.6% 대 48.0%)로 이겼다.

이재창 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