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법한류(K-Law)를 꿈꾸며
2주 전 6·25전쟁 참전국인 태국 최고행정법원에 다녀왔다. 태국 사법부는 초기 전산화 단계를 지나 본격적인 사법정보화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의 앞선 사법정보화를 벤치마킹해 사법 시스템을 혁신하려는 것이다. 이 연장선에서 한국의 사법정보화시스템을 강의해 주기를 요청받았다.

초창기 사법정보화의 핵심 요소는 적정한 예산 확보, 구성원의 열정과 참여 분위기 조성, 혁신에 대한 공감대 확보 등이다. 한국 사법정보화 수준은 세계 정상급이다. 전 세계 사법부에서도 이를 인정한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 지역에서는 한국 사법정보화를 벤치마킹해 자국의 열악한 사법 시스템을 혁신하려는 욕구가 어느 때보다 크다.

중국은 이미 상하이와 항저우 등 거점도시 일부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사법정보화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은행 민사재판 분야 계약이행 평가지수’에서 순위권 밖이던 중국이 2017년 평가에서 5위로 급상승해 1위인 한국 사법부 위치를 넘보는 것도 발 빠른 사법정보화 구축에 따른 결과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케이팝(K-Pop)처럼 사법한류(K-Law)를 꿈꾸고 실천할 수 있다. 한국 법원의 경험에 민간 정보화시스템 개발(SI) 업체의 노하우와 우수 인재를 결합하면 이른 시일 내 제3세계에 우리 사법정보화 시스템을 수출할 수 있다. 주(州)마다 법이 다른 미국과 달리 이런 나라 법체계는 단일한 중앙집권 체제이기에 정보화에 유리하다.

유럽과 일본은 법관의 업무 부담이 한국에 비해 덜해 사법정보화 욕구가 작고 발전 속도가 느리다. 한국 법관은 1인당 국민 1만7000명을 담당한다. 그만큼 처리해야 할 분쟁 건수가 많아 고강도 업무를 감내하고 있다. 중국은 국민 9000명당 법관이 1명 수준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법관 인원이 극히 부족하고 업무는 산적해 있어 사법정보화로 활로를 찾았다. 이제 이 축적된 경험을 수출하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예산은 장기 차관 형태의 패키지로 제공하는 방법을 강구할 수 있다. 제3세계 국가를 한국의 든든한 외교 우방으로 두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책이 있을까. 시스템이 한 번 구축되면 지속적으로 관계가 이어진다.

이런 시기에 한국이 앞선 사법정보화 노하우를 태국 사법부에 전수함으로써 한국 법원을 사법정보화의 모범 모델로 삼는 계기가 됐다. 양국 간 지속적인 사법 교류의 토대가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국제적인 협력과 교류가 늘어난다면 이것이 바로 사법한류의 작은 디딤돌이 되리라 확신한다.

강민구 < 법원도서관장 fb.me/KANGMK7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