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386세대는 어쩌다 '밉상'이 됐을까
제가 ‘82학번이 82학번에게’라는 칼럼(한경 2012년 10월24일자)을 쓴 지 벌써 5년이 흘렀군요. 58년 개띠 이후 가장 주목받는 82학번이지만 80년대 트라우마에 갇혀선 미래를 이끌 수 없다고 썼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별로 달라진 게 없네요.

‘쪽수’가 확 불어난 82학번은 386세대의 핵심이었죠. 386 대부분이 50대이니 ‘586(50대, 60년대생, 80년대 학번)’이라 불러야 할까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정치 법조 언론 교육 기업 등 어디에서나 중추가 됐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장 욕먹는 세대가 386인 것도 아시는지요.

꿈도 잃은 ‘N포세대’ 젊은이들은 386을 ‘꿀 빠는 세대’라고 부릅니다. 대학은 졸업정원제로 쉽게 들어가, 데모만 하다가, 저질 스펙에도 ‘3저(低) 호황’ 덕에 번듯한 직장 잡고, 외환위기 땐 젊어서 살아남고, 나이 들어 정년연장 수혜자가 됐으니 말이죠. 은퇴 후에도 국민연금이 거덜나기 전에 연금까지 알뜰히 챙길 겁니다. ‘N포세대’와는 정반대의 삶이죠. 그러면서 청년을 위로한답시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니 얼마나 밉상이겠습니까.

다른 별칭이 ‘완장 찬 꼰대’입니다. 엑셀은커녕 어학 실력도 변변찮으면서 높은 자리 꿰차고 앉아 지적질에만 능하다는 거죠. 아니라고요?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의 ‘꼰대 6하원칙(5W1H)’에 본인의 언행을 대입해 보시길. ‘내가 누군지 알아(who)’, ‘우리 땐 말이야(when)’, ‘어딜 감히(where)’, ‘니가 뭔데(what)’, ‘내가 그걸 왜(why)’, ‘어떻게 나한테(how)’.

386은 시대의 반작용이자 부산물입니다. 젊은 날 ‘거악(巨惡)’에 맞선 ‘87체제 주역’이란 자부심이 세대적 특징이죠. 그만큼 시대의 트라우마도 깊습니다. 하지만 벌써 30년 전 일입니다. 이젠 다 내려놔야죠. 아직도 붙잡고 있으니 시인 최영미가 ‘관념으로 도배된 자기도취와 감상적 애국’, ‘감옥에서 시장으로 나온 흑백논리’라고 비판하죠. 청년들의 비난은 훨씬 노골적입니다. 기성세대의 중심부에 앉아 과거 영웅담과 허세, 지적 오만으로 가르치려 든다고 합니다.

이런 오명은 ‘정치판 386’의 책임이 큽니다. 왜,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지 모호한 이들이 많죠. 낡은 이념에 포획된 채 권력욕과 기회주의만 남은 듯합니다. ‘똥차’로도 불리더군요. 30년 전 시위 전력을 ‘훈장’ 삼아 벌써 3~4선을 쌓은 국회의원이 수두룩합니다. 보수정당도 오십보백보죠. 영입된 ‘젊은 보수’들이 갈수록 강남좌파를 닮아갑니다. 시장경제 공부는 안 하고 웰빙을 즐긴 결과겠죠. 민간의 동년배들은 속속 직장에서 퇴장하지만 정치인은 정년도 없습니다. 그러니 오십이 넘어도 소장파 코스프레죠. YS DJ만큼 오래 버티면 최다선(選) 기록도 깰 겁니다. 후배들은 그 밑에서 평생 보좌관이나 하고.

‘민주 꼰대’든 ‘보수 꼰대’든 밀려나기 전에 용퇴할 때가 다가옵니다. 공부 안 하고 세계 흐름에 무지한 채 더 버티면 곧 퇴물이 됩니다. 80년대 부채의식도, 그 반대의 채권의식도 버려야죠. 요즘 청년들은 386에 빚진 게 없습니다. 뒷일은 걱정마세요. 단군 이래 최대 스펙과 글로벌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인재들이 널려 있으니. 이참에 정치과잉도 확 줄여야죠.

대학에는 386 폴리페서들이 넘칩니다. 대선캠프 기웃거리려면 사표 내고 하세요. ‘되면 한자리, 안 되면 복귀’는 너무 불공정하잖아요. 더 실력 있고 잘 가르칠 후학들 많습니다. 시민·사회단체의 386도 미망에서 깨어나세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낡은 이념을 주입하고, 노동시장을 카스트처럼 계급화하면서 미래세대에 미안하지 않습니까.

언제부턴가 386이 한국 사회의 적폐이자 문제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화석화된 사고, 권력 지향성, 시대착오적 채권의식이 물 빠진 저수지처럼 바닥을 드러냅니다. 자기반성과 쇄신이 없으면 미래도 없습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