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왼쪽), KBS '아버지가 이상해'
MBC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왼쪽), KBS '아버지가 이상해'
“그동안 어떤 심정으로 뒷바라지를 해왔는데…. 당신은 왜 계속 아무 말도 안 해? 차라리 욕이라도 해.”

부인 나영실(김해숙 분)의 토로에도 남편 변한수(김영철 분)는 조용히 소주만 들이켠다. 그러다 씁쓸한 표정으로 읊조린다. “이제부터 내 아들 아니야 그놈. 잘난 놈은 아니었어도 그래도 믿었어. 다 내 헛된 망상이었나봐.”

작은 분식집을 하면서 4남매를 키웠다. 힘들었지만 잘 버티며 인자한 아빠, 자상한 남편으로 살았다. 5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장남 변준영(민진웅 분)도 믿음직한 아들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시험을 코앞에 두고 비밀 연애를 했고 여자친구가 임신까지 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변한수는 망연자실한다. KBS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는 지난 9일 닐슨코리아 집계 기준 26.8%로 일간 시청률 1위에 올랐다.

◆독립 못 한 자식에 속앓는 아버지

부모 노후자산 탐내도, 만년 '취준생' 에 머물러도 끝까지 자식 '모시는' 아버지들, 당신이 진짜 영웅입니다
이 시대 아버지를 재조명한 드라마들이 인기다. ‘아버지가 이상해’뿐만 아니다. MBC 주말드라마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도 같은 날 14.0%로 일간 시청률 4위를 차지했다. 두 작품 모두 나이가 들어 편히 쉴 때도 됐지만 자식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희생하는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모습을 비춘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엔 ‘아내가 있는 풍경’ 등 많은 드라마들이 갑작스러운 명예퇴직으로 고개 숙인 아버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잘나가다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아버지는 상실감에 허덕이고 자식들은 생계를 잇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외환위기의 현실이 투영된 방송가였다.

최근엔 조금 달라졌다. 은퇴 후에도 일을 하며, 취업문을 뚫지 못한 자식을 계속 품고 사는 아버지들이 많다. 취업난이 아니더라도 경제적 이유 등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기도 하고, 결혼 후 아이를 덥석 부모에게 맡긴다. 말없이 조용히 웃지만 아버지의 고된 마음은 끝이 없다.

드라마도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변한수는 다 큰 4남매를 한집에 데리고 산다. 힘들지만 내색하지 않고 자식들을 아낀다. 결국 장남의 속도위반도 받아들이고 용서한다. 하지만 장남에 이어 딸 변혜영(이유리 분)의 거짓말에 또 한 번 좌절을 겪게 된다. 변혜영은 부모를 속이고 남자친구와 동거하기 위해 집을 나간다.

변한수는 딸의 독립이 못내 서운하지만 딸을 위해 밑반찬을 직접 만들고, 떠나는 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거짓이란 사실이 밝혀지면 그는 다시 한번 심한 충격에 휩싸일 게 뻔하다. 배우 김영철은 “그래도 아이들의 아픔을 끝까지 사랑으로 감싸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며 “시청자들에게 아버지만의 따뜻한 감성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자식들 이기심도 끌어안는 아버지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는 제목과 달리 아버지가 자식들을 ‘모시는’ 내용의 드라마다. 한형섭(김창완 분)은 아내 문정애(김혜옥 분)와 함께 4남매를 키우느라 평생을 바쳤다. 특별한 노후 대책도 없이 살아가다 노모 황미옥(나문희 분)에게서 45평 빌라 한 층을 상속받았다.

빌라에 월세를 놓고 세계 여행을 떠날 날만 꿈꾸던 부부. 그러던 어느 날 신문기자로 일하던 장남 한성훈(이승준 분)이 해직된 뒤 빚더미에 오른 걸 알고 그의 가족까지 받아들인다. 여기에 이를 시기한 차남 한성식(황동주 분) 등 4남매 모두 이기심 때문에 부모의 집으로 들어온다.

또다시 자식들에게 얽매이게 된 아버지. 그래도 기쁘게 이를 받아들이려는 그를 아내는 씁쓸하게 바라보며 울부짖는다. “너희들 위해 싼 도시락만 해도 몇만 개는 될 거야. 너희들이 밀고 들어오면 우리 인생은 뭐가 되니.”

부모의 사랑이 끝이 없듯 자식들의 이기심도 끝이 없다. 장남 한성훈은 사업을 위해 사채까지 끌어다 쓴다. 결국 한형섭은 노모에게서 받은 빌라마저 내놓는다. 자식의 과오로 마지막 보루였던 집까지 잃은 아버지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연출을 맡은 이대영 PD는 “효도를 이야기하는 교훈적인 드라마는 아니지만 독립할 용기도, 여력도 없는 젊은 자식들이 부모 집으로 돌아가는 요즘 세태를 반영하고자 했다”며 “자식과 부모가 서로 갈등하게 되지만 결국 사랑과 정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