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속탄다…'31조원에 사겠다' 폭스콘 제안도 그림의 떡?
日美정부 기술유출 경계 때문…美WD "독점교섭권" 요구도 변수로 등장
후지쓰 등 일본업체들은 출자에 부정적…매각작업 장기화 우려


도시바(東芝)가 반도체사업부문인 도시바메모리 매각 작업에서 '일본연합군' 구성이 곤란하다는 지적에 따라 속을 태우고 있다.

일본연합으로 거론된 기업들이 투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서다.

아울러 무려 3조엔(31조원)에 사겠다는 대만 훙하이정밀공업(폭스콘)의 통 큰 베팅도 기술유출을 걱정하는 일본정부 입장 때문에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2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경제동우회 고바야시 요시미쓰 간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업 등이 연합해 도시바메모리에 출자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실현되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고바야시 간사장은 도시바의 사외이사여서 그의 발언은 시장의 주목을 끌었다.

일본연합은 후지쓰, 후지필름홀딩스 등과 관민펀드 산업혁신기구 등이 합동으로 도시바메모리에 출자하자는 구상이다.

그런데 주무부서인 경제산업성으로부터 출자 타진을 받은 대기업 쪽에서는 "우리 회사 주주들에게 (도시바메모리 인수 일본연합 참여를) 설명할 수 없다"며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기업들은 "반도체는 시황변화가 격하고 설비나 기술개발에 거액의 투자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회사 내부나 주주들에게 설명책임이 있는데, 납득시키기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거론되는 기업 측의 이 같은 반응을 파악하고 있는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실제로 일본연합을 실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높은 것이 현실"이라고 인정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이처럼 도시바메모리 매각의 변수는 일본 정부의 개입이다.

국가안보 측면에서 중국 쪽으로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우려, 조금 싸더라도 일본이나 미국 연합에 매각하기를 바란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연합에 의한 도시바메모리 인수 추진에 대해 "산업혁신기구는 취지에 부합하는 안건이 있으면 제도상 지원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스가 장관은 중국에 공장이 있는 대만 훙하이 등이 응찰한 것에 대해서는 "외환법에 따라 사전서류제출 대상이다.

국가의 안전 등 관점에서 엄격한 심사를 실시한다"고까지 말했다.

경제산업성도 "도시바의 반도체사업은 기술이 유출되면 안전보장상 문제가 된다"면서 중국이나 대만으로의 기술유출을 경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시바메모리 매각 작업은 지연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면 도시바는 다급하다.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가급적이면 좀 더 높은 가격에, 빠르게 도시바메모리 지분을 매각해 미국 원전사업에서 발생한 10조원대 손실을 메꾸고 종잣돈도 확보하려 한다.

도시바는 정부의 제동에 곤혹스러움을 숨기지 않는다.

도시바는 5월로 예정된 2016년도 결산에서 채무초과에 빠질 것이 확실해 상장 유지를 위해서는 2017년도에 채무초과를 해소해야 한다.

도시바로서는 훙하이가 3월 29일 마감한 입찰에서 제시한 3조엔의 최고 응찰액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액수"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다른 입찰 참여사들이 2조엔 안팎을 써 낸 것으로 알려진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베팅이다.

그러나 훙하이는 다수의 공장이 중국에 있으므로 일본 정부 내에서는 경계감이 강해 만약 도시바 측이 홍하이를 택하려 하면 정부가 협상 중지나 수정을 권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마이니치는 소개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도시바가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훙하이에 넘기는 것을 일본과 미국 정부의 반대 때문에 포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미국의 웨스턴디지털(WD)이 도시바메모리를 다른 회사에 넘기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번 입찰의 변수로 등장했다.

WD는 최근 도시바 이사회에 보낸 의견서에서 메모리사업의 제3자 매각은 WD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자사와 독점적인 교섭권을 요구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WD는 도시바메모리의 주력공장인 미에현 욧카이치공장을 공동운영 중인 협력사이며 이번 입찰에도 참여했다.

이처럼 다양한 문제들을 고려하면서 매각선을 찾는 것은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5월 2차 입찰, 6월 우선협상자 선정 등 도시바메모리 매각 작업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다.

도시바메모리 입찰에는 미국 웨스턴디지털이나 브로드컴, 한국 SK하이닉스, 훙하이 등 제조업체와 미국 펀드 실버레이크파트너스 등 10개사 안팎이 응했지만, 일본 기업은 하나도 없다.

도시바는 매각 작업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일본 개별 기업이나 연합세력이 응찰할 길을 열어두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tae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