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 노량진이여!
노량진(鷺梁津)은 ‘백로가 노니는 나루터’라는 뜻이다. 1899년 경인선 노량진~제물포 구간이 개통되면서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이 됐다. 1970년대 후반엔 정부의 도심 인구 분산정책으로 입시학원들이 대부분 지리적 이점이 있는 노량진으로 이전하면서 학원 중심가가 된다. 노량진은 교통 요충지이자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몰려드는 희망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지금 노량진의 현실은 어떤가. 한 언론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이른바 ‘공시족’이 28만90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시험 합격 비율은 1.8%. 한 해 6000명만 붙고 28만3000명은 낙방한다. 노량진은 더 이상 청년 실업의 해방구가 아니다. 다시 한번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절망하는 곳이며, 미래의 꿈이 사라지는 동네로 전락하고 있다. 떨어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시·공시 공부에 몰입하느라 수십만명의 청년이 연애도, 결혼도 포기·연기하면서 젊음을 썩히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청년들이 공시로 몰려드는 주된 이유는 고용 안정성 보장이다. 공시족 중 진심으로 공무원이 되고 싶은 사람의 비율은 현저히 낮다. 안주를 위해 대피소를 찾는 것이다. 성공한다면 그게 인생의 안전한 천막이 돼 주니까. 하지만 현실은 1.8%의 합격률 아래에서,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많고 미래에 대한 기약은 없다. 불합격할 경우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도 않다.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투자 비용은 늘고 대안을 찾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공시족 100명 중 98명은 또다시 ‘노량진의 수렁’에 빠져든다. 삶의 다른 대안을 보여주지 못하는 왜곡된 사회가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그 프레임 안에 빠져서 희망 없는 미래를 바라만 보는 청년들의 의식 지체 현상도 큰 문제다.

아, 노량진이여! 어쩌다 젊은 세대들이 빠져드는 나락의 구렁텅이가 됐는가. 너를 중심으로 대로가 뻗어나가던 그 기개는 어디 가고, 희망 없는 청년들이 천지 사방에서 모여드는 절망의 장소가 됐는가. 월남 이상재 선생은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했는데, 그 청년을 살리려면 우선 노량진이 바뀌어야 한다. 안정을 원했으나 가장 불완전한 존재로 전락하고만 젊은 세대들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백로가 노니는 나루터’라는 의미처럼 청년들이 맘껏 기개를 펼칠 수 있는 곳, 공시를 넘어 인생의 가치를 탐색하고 성찰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노량진을 위해 새로운 비전을 찾고 싶다.

손주은 < 메가스터디그룹 회장 son@megastudy.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