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토론] 근로시간 단축 법으로 강제해야 하나
근로시간 단축 자체는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다. 장시간 근로를 없애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주요 대선주자들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근로시간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각론은 여전히 날이 서 있다. 세부 쟁점은 ‘즉각적이고 엄격하게’ 노동시간을 줄이느냐, ‘단계적으로 유연하게’ 단축하느냐로 요약할 수 있다.

노동계에선 정부가 나서서 최대한 엄격하게 근로시간을 규제해 달라고 요구한다. 국내 노동환경에선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는 게 힘들다는 견해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평균 1766시간에 비해 길다. 기업들이 이윤확대를 위해 인력 규모를 최소화하기 때문에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계에선 노사 자율에 맡겨 근로시간 운영을 자유롭게 정하는 게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엄격한 규제는 다양한 근로형태가 발전하고 있는 경영환경과는 맞지 않는다고 반발한다. 정부가 아니라 노사가 경직적인 근로시간 문제를 해결해야 산업 변화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근로시간 관련 규제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근로시간 규제가 없다. 근로시간은 근로자와 회사가 합의해서 정한다. 대신 초과근무를 할 때는 가산수당 50%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영국은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48시간으로 두고 있지만 노사 합의에 따라 60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독일도 단체협약을 통해 하루 근로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프랑스는 하루 10시간, 주 35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 OECD보다 연 10주 더 일하는 현실…장시간 근로 '비정상의 정상화' 절실

경제·사회 질적 도약 위해 근로시간 단축 선행돼야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고용노사관계학회 이사 △고용보험위원회 위원 △전 금속노련 정책기획실장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고용노사관계학회 이사 △고용보험위원회 위원 △전 금속노련 정책기획실장
한국 근로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5년 기준으로 2113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평균 1766시간에 비해 347시간(약 20%) 많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취업자들보다 연간 10.3주, 2.4개월을 더 일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과로사, 돌연사 등 노동자의 건강권이 위협받는다. 자녀양육과 가사분담이 이뤄지지 않아 일과 삶이 부조화되고 있다. 일자리창출 저해, 노동생산성 저하의 문제를 낳고 있다.

장시간 노동이 허용되는 첫 번째 이유는 법정 노동시간 미적용(사각지대) 대상자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기업 인사전략에 따른 것이다. 기업은 무한이윤 확보와 노무비 절감에 맞춰 ‘과중업무·과소고용’으로 인력규모를 최소화하고 있다. 세 번째는 잔업, 특근에 맞춰진 불안정적 임금체계와 저임금구조다. 마지막으로 휴식·휴가보다 소처럼 묵묵히 오래 일하는 노동문화가 사회적으로 규범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노동시간을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이 ‘무한노동’을 허용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과 노사 당사자 합의로 주당 12시간까지 초과근로가 가능하다. 하지만 법정 노동시간을 적용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노동자는 1257만명에 달한다. 2015년 기준 전체 임금노동자 1990만명의 63.2%로 10명 중 6명 이상이다.

장시간 노동의 원인은 정부에 있다. 고용노동부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근로기준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용부는 ‘1주=5일’로 인정하는 비상식적 해석을 내리면서 1주일에 총 68시간(주중 연장근로 12시간, 토요일 8시간, 일요일 8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시켜도 법 위반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실제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자는 고용부 통계로 2015년 현재 107만명에 이른다.
[맞짱토론] 근로시간 단축 법으로 강제해야 하나
사법부의 판단은 고용부와 다르다. 대법원 소속 노동법실무연구회가 발간한 ‘근로기준법 주해’에서는 고용부의 행정해석이 잘못됐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따라서 고용부는 잘못된 행정해석지침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대통령령인 ‘훈령 예규 등의 발령·관리 규정’은 정부가 고시하는 각종 훈령 예규는 변화하는 현실을 고려해 3년마다 재검토하고 이를 다시 고시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부는 이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현장의 혼란과 갈등, 불필요한 분쟁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지난 20일까지 근로기준법 개정을 논의했지만 고용부와 보수정당의 반대에 부딪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장시간 노동의 개선은 한국 경제·사회가 질적 도약을 하기 위한 지상 과제다. 노동시간 단축은 장기 침체된 내수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대선 후 시급히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고 고용부의 위법한 지침을 폐기해 고용 유발효과가 큰 서비스 분야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

OECD에 가입한 지 21년이 되는 나라에서 불명예스러운 꼴등 통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과 콘텐츠로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 시간이 부가가치를 만들던 사회에서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사회로 가고 있다. 저임금과 저부가가치, 장시간 노동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고 적정임금과 고부가가치, 노동시간 단축의 선순환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한국이 저개발국가 수준의 장시간 노동시스템에 의존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제대로 된 국격을 갖춰야 한다.

■ 중소기업 근로시간 단축 비용 연 8.6조…'임금 삭감·고용 위축' 후폭풍 우려

연장근로 등 노사합의 통한 자율적 운영 바람직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중앙대 인적자원개발정책학과 박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한국산업인력공단 경영자문위원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중앙대 인적자원개발정책학과 박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한국산업인력공단 경영자문위원
헌법 제32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지며(제1항), 이와 동시에 근로의 의무를 진다(제2항)’.

권리와 의무 측면에서 근로의 양면성을 명시한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주 근로시간을 40시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사자 간 합의를 전제로 ‘1주 12시간 한도’로 연장근로도 허용한다. 기업들은 지금까지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에 따라 연장근로와는 별개로 최대 16시간 휴일근로를 운영해 왔다.

근로시간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연 2113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2246시간) 다음으로 많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주중 연장근로(12시간)와 휴일근로(16시간)를 12시간의 연장근로로 축소하고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수당을 중복 할증하는 등의 형태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법을 통한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조건 개선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비로소 의미가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정부가 재정 투입을 통해 강력하게 개입하지 않는 한 노사 양측 모두에 손해다. 특히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손해 금액의 대부분은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종업원들이 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중소기업 비용 부담은 연 8조6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과 달리 급여 지급 여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감소한 만큼 임금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맞짱토론] 근로시간 단축 법으로 강제해야 하나
근로시간 단축은 중소기업 입장에서 내국인 신규 고용으로 연계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의존성을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 외국인 근로자 1인당 월평균 노동비용은 2014년 기준 211만원으로 내국인 근로자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뿌리산업 등 제조현장에서는 높은 급여 수준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근로자 비중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88.5%가 ‘내국인 근로자 구인의 어려움’을 이유로 꼽고 있다.

국가 경쟁력이나 국민 대통합 관점에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기능은 막대하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노사 간 신뢰에 기반한 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2015년 9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합의문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연장근로 한도에 휴일근로를 포함하는 것에 대해 합의하면서도 산업 현장의 부담 완화 방안을 포함했다. 시행 시기를 종업원 규모에 따라 4단계로 구분했다. 4년간 한시적으로 1주 8시간 한도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했다. 하지만 여당과 야당, 노동계와 정부 간 대립 탓에 합의 사항이 지켜지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근로시간 단축안은 노·사·정 대타협 정신과도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 초과근로 시 할증률(50%) 문제도 통상임금의 25% 이상 가산해 보상하도록 규정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나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외국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보완책을 두고 있다. 노사 합의에 따른 추가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했다. 초과근로는 독일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 주요 국가들이 노사 간 자율 결정의 영역으로 남겨 두고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 속담처럼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다 더 중요한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초가삼간(중소기업)을 태우고라도 빈대(근로시간 단축)를 잡았다는 사실에 기뻐할 것인가. 초가삼간이 타버린 후 멋진 새집을 짓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