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반장’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최중락 전 총경이 지난 24일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그는 경찰생활 40년 대부분을 강력계 형사로 일하며 1300명을 검거한 ‘포도왕’이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수사연구관으로 매일 경찰청에 들러 사건일지를 들춰보며 후배들을 가르쳤다.
최 총경은 한 인터뷰에서 1970년대에 ‘수사반장’이 나온 것은 “서독에 파견됐던 광부와 간호사들이 돌아오면서 경제 사정이 좋아지자 떼강도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범죄 예방을 위해 드라마를 제작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기획 단계에서 MBC가 경찰에 지원을 요청했고 당시 ‘포도왕’이던 최 총경이 파견됐다.
최 총경은 배우들을 경찰학교에 입교시키고 사건 현장에도 데리고 다니며 훈련시켰다. 그가 범죄를 바라보는 눈도 ‘수사반장’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는 범죄를 미화하는 것에 반대했다. 좀도둑 조세형을 ‘대도’라고 부르는 것을 가장 못마땅해한 사람이 그다. 16세 때 라디오와 은수저를 훔친 조세형을 잡은 게 바로 최 총경이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도 그의 지론이다. 경찰 후배들에게는 “살인사건에서 죽인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나쁜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을 자주 강조하기도 했다.
최 총경의 조언을 바탕으로 실화를 다룬 ‘수사반장’은 공전의 인기를 누렸다. 최고 시청률이 70%를 기록하기도 했다. 극중 주인공인 박 반장(최불암) 김 형사(김상순) 조 형사(조경환) 남 형사(남성훈) 미스 리(이금복) 등은 국민적 스타였다. 여형사로 출연한 김영애 이휘향 김화란 오미희 노경주 등도 유명 배우가 됐다. 악역으로 자주 나온 이계인 조형기 등은 길거리에서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최 총경은 화성 연쇄살인범을 잡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었다고 한다. 최근엔 범죄자는 가정환경 때문에 생겨난다며 학부모를 상대로 예방교육을 많이 다녔다. 예전엔 범죄자들이 잡히면 눈물을 흘리며 반성했는데 경제가 좋아지자 범죄가 더 흉포화되고 조직화되고 있다며 걱정하던 그다. ‘수사반장’ 최종회에서 박 반장이 은퇴를 결심하며 남긴 명대사는 그의 이런 걱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빌딩이 높을수록 그림자는 길어진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