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장근로 제한은 노사합의에 맡겨야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겠다는 정치권의 행태 말이다. 아무리 대선을 앞둬 표(票)가 아쉬운 상황이라지만 주당 68시간까지 가능한 근로시간을 16시간이나 줄이고 이를 지키지 않는 기업은 형사처벌하겠다는 발상은 너무 무책임하다. 2~4년의 유예기간을 준들 근로행태가 쉬 바뀔 수는 없다.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 연장근로를 통해 소득을 보전받는 근로자 모두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평소 ‘국민주권’ 운운하던 정치권이 산업현장에 미치는 피해는 안중에도 없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달콤한(?) 목표에만 매달려 일사천리로 처리한 분위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긴 한국의 장시간 근로는 당연히 줄여야 한다. 장시간 근로는 일과 가정의 불균형, 근로자의 업무집중도 저하와 피로 증가, 이에 따른 건강악화와 비용 증가 등 많은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창출, 일과 가정의 양립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 가능해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한 근로시간 단축 방안은 기업현장에서 연착륙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 따라서 이 법이 통과되면 기업의 생산활동에 차질이 빚어지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

지금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유연한 사고와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다. 한때 장시간 근로로 인해 미국으로부터 통상압력까지 받았던 일본의 근로시간 단축 해법은 우리나라 정부나 정치권에서 교과서로 삼을 만하다. 일본은 1980년대만 해도 제조업의 경우 연 2300시간이 넘는 장시간 근로로 인해 과로사가 사회문제화할 정도였다. 장시간 근로를 통해 제품단가를 낮추는 ‘레이버 덤핑(labor dumping)’을 하고 있다는 비판 때문에 1985년 엔화가치의 조정을 위한 ‘플라자합의’ 때 미국을 비롯한 선진 5개국(G5)으로부터 통상압력을 받기까지 했다.

일본 정부는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간 48시간이던 주당 법정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줄였고 1998년에는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근로시간을 보완해주기 위해 노사가 합의하면 법정기준 이상으로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노동기준법 36조를 개정한 이른바 ‘36협정’을 통해서다. 노사의 자율 결정을 먼저 고려한 정책으로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전체 근로시간의 감소를 방지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노사의 상생과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한국 정치권이 노·사·정 대타협 내용마저 외면하고 처벌중심의 단기적인 근로시간 단축 정책을 마련하는 등 생색내기에만 몰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상생해법이다.

2013년 일본 후생노동성을 방문했을 때 들은 근로시간정책 담당자의 말은 근로시간 단축이란 노동현안을 처리하는 한국의 정치권과 일본의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법을 시행하는 데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 정책도 경제에 입히는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연착륙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일본은 연장근로를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노사 자율결정을 존중해가며 시행하고 있다.” 노사자율을 존중하며 다양한 제도를 통해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해온 일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700시간대로 줄어든 상태다. 노사의 처지를 함께 고려한 상생 정책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한국도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와 처벌 중심의 경직되고 획일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노사가 상생하면서도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효율적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윤기설 < 한국폴리텍대 아산캠퍼스 학장 upyks@kopo.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