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에 주요국 정상들에 앞서 그를 만나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이 이번에는 일본을 방문한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깜짝 만남을 가져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손 사장은 14일 저녁 8시 반부터 약 25분간 살만 국왕과 만났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작년 10월 기술분야에 투자하는 10조엔(약 100조 원) 규모의 펀드를 설립하겠다며 사우디 국영펀드가 4조7천억 엔(약 47조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날 살만 국왕을 만나고 나온 손 사장은 소프트뱅크가 설립할 펀드를 통해 사우디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으며 살만 국왕은 크게 기대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손 사장은 살만 국왕에게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대화형 로봇 '페파'를 선물했다.

살만 국왕은 인형 로봇에게 '환영한다'며 말을 건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를 비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 1998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도 만나는 등 세계를 움직이는 각국 요인들과 어렵지 않게(?) 만나는 그의 넓은 인맥의 원천은 어디이고 그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그가 트럼프를 만난 인연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6세의 손정의 사장은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전시회인 컴덱스를 참관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는 정작 전시회는 대충 둘러본 후 컴덱스 운영회사의 최고경영자를 불쑥 찾아갔다.

그가 찾아간 상대는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당대에 부를 일군 셸든 아델슨(Sheldon Gary Adelson) 이었다.

노 타이 차림으로 아델슨 앞에 나타난 손 사장은 대뜸 "컴덱스를 사고 싶다. 언젠가 내가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놀란 아델슨이 "당신에게 그럴 돈이 있느냐"고 묻자 손 사장은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만들겠다 그때까지 팔지 말아달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1년 후 아델슨 앞에 다시 나타난 손 사장은 배석한 임원들에게 나가 달라고 한 후 아델슨과 1대1이 되자 "컴덱스의 값을 깎을 생각은 없다. 한 번에 끝내자. 팔고 싶은 가격을 한 번만 제시하라. 안되면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8억 달러 달라". "알았다". 손 사장이 오른손을 내밀자 아델슨이 맞잡았다.

이 거래가 이후 수없이 많이 이뤄질 손 사장의 기업 인수·합병(M&A)의 데뷔전이었다.

그 아델슨에게서 작년 말 손 사장에게 갑작스럽게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트럼프를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아델슨은 손 사장에게 컴덱스를 팔아 챙긴 8억 달러를 밑천으로 카지노 리조트를 잇달아 건설, 지금은 카지노 왕으로 불리는 거부다.

공화당 지지자로 트럼프 개인에게도 거액의 헌금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년도 더 전에 만난 손 사장의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던 것으로 보인다.

뉴욕 5번가의 트럼프 타워에서 만난 트럼프와 손정의는 똑같이 빨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미국 공화당의 상징색이다.

트럼프는 "마사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45분간의 만남에서 어느새 애칭을 부르는 사이가 됐다.

첫 만남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둘 사이의 친밀도를 드러내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손 사장은 1998년에는 오랜 친구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함께 청와대를 방문, 김대중 대통령과도 만났다.

당시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한창 어렵던 시기다.

두 사람을 만난 김 전 대통령은 "한국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손 사장이 먼저 입을 열였다.

"3가지다. 첫째는 브로드밴드,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다". 빌 게이츠도 동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브로드밴드가 뭔지 잘 몰랐지만, 조언을 받아들였다.

이후 한국은 전국에 초고속통신망을 갖춰 브로드밴드 선진국이 됐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福島)원전 사고로 이어진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자 손 사장은 돌연 "사장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탈원전에 전념하겠다는 것이었다.

주위의 만류로 사장에서 물러나지는 않았지만, 몽골에서는 풍력, 인도에서는 태양광, 러시아에서는 수력발전을 추진해 생산한 전력을 아시아 전체에 공급하고 일본에도 들여온다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꺼내 들고 푸틴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나섰다.

"정치상인(政商)"이라는 안팎의 비난을 우려한 참모들의 만류로 당시 푸틴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작년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마침내 푸틴과 만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작년 12월에는 일본을 방문한 푸틴이 게이단렌(經團連)을 방문했을 때 문앞에서 인사를 나누며 어깨를 껴안은 두 사람의 모습이 TV 화면을 탔다.

일본 정·재계에서는 손 사장의 이런 행보를 '정치상인'이라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주위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정치와는 무관한 사람이다.

그는 앞으로도 때로 정치상인의 모습을 보이겠지만 정치에 접근하는 게 그의 목적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lhy501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