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이 크게 떨어지면서 농민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 가운데 일부를 다시 토해내야 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반발한 농민들은 반납 거부 투쟁을 선언했다. 쌀 공급 과잉으로 농업계가 우선지급금 반납과 변동직불금 삭감이라는 ‘이중고’에 신음하고 있다.
쌀값 하락에…사상 첫 '쌀 우선지급금 회수' 사태
◆사상 첫 우선지급금 환급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27일부터 우선지급금 환급을 요청하는 고지서를 각 농가에 발송해 과다 지급으로 발생한 차액을 환수할 계획이다. 우선지급금은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공공비축미 등을 농가에서 매입하면서 미리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공공비축미 매입 가격은 수확기인 10~12월 평균 쌀값을 기준으로 한다. 수확기 쌀값은 보통 12월 말에서 이듬해 1월 사이 확정된다. 그러나 실제 매입은 그보다 이른 9~10월께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는 농민들의 편의를 위해 매입 가격을 미리 산정해 우선 지급해왔다. 지난해 우선지급금은 8월 평균 산지 쌀값(1등급 벼 40㎏ 1포대당 4만8280원)의 약 93% 수준인 4만5000원으로 결정됐다.

우선지급금 지급 후 수확기 쌀값이 확정돼 최종 매입 가격이 정해지면 다시 정산절차를 거친다.

이때 매입가가 우선지급금보다 높으면 정부가 농민에게 차액을 추가로 지급하고, 매입가가 낮으면 농민으로부터 차액을 돌려받게 된다. 우선지급금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지난해까지는 우선지급금이 항상 최종 매입가보다 낮아 정부가 농민에게 포대당 4500원 정도를 더 지급했다.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공공비축미 매입 가격이 작년에 지급한 우선지급금보다 낮은 4만4140원으로 확정됐다.

우선지급금이 매입가보다 포대당 860원 더 많아지면서 농민들이 그만큼의 차액을 반납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전체 환급금 규모는 195억원가량이다.

공공비축미 매입 가격이 우선지급금보다 낮아진 이유는 쌀값이 예상보다 더 큰 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산지 쌀값(80㎏)은 12만9628원이었다. 쌀값이 13만원 아래로 내려간 것은 1995년 이후 21년 만의 일이다. 수확기(작년 10월~올 1월) 쌀값은 12만9711원으로 더 낮아졌다.

쌀값 폭락은 정부가 쌀값 변동에 따른 농가 피해를 일부 보전해주는 변동직불금 급증으로도 이어졌다. 올해 정부가 농가에 지급해야 할 변동직불금은 1조4977억원으로 사상 처음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한국의 농업보조금 한도(1조4900억원)를 초과했다.

결국 농식품부는 보조금 한도를 지키기 위해 쌀 한 가마니(80㎏)당 변동직불금을 174원 삭감해 지급하기로 했다.

◆반납 거부 투쟁 나선 농민단체

우선지급금 환급을 놓고 정부와 농민단체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정부는 시세에 비해 과다하게 지급된 우선지급금은 국민 세금을 재원으로 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환수해야 한다고 본다. 봉급생활자가 1년 동안 낸 세금을 연말에 다시 한 번 정산하듯 농민들도 우선지급금과 매입가격 간 차액을 정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정책 실패로 발생한 쌀값 폭락 사태의 책임을 농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우선지급금 환급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전농은 25일 우선지급금 환급 업무를 대행하는 농협중앙회 앞에서 대규모 환급 거부 집회도 열 예정이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농민들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환급금은 일단 돌려주되 쌀값 폭락이나 정부 정책 실패 등의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