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질투의 악법이 이 지경을 만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은 해외에서도 대형 뉴스다. 외신들은 삼성을 정경유착과 부패의 상징으로 깎아내리며 한국의 재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턱도 없는 관전평을 늘어놓는다. 물론 이들이 한국 기업의 속사정을 제대로 파악했을 리 없다. 국내 언론조차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정의가 구현됐다는 한심한 기사를 휘갈기고 있으니 말이다.

경영권 불안에서 비롯된 일이다. 한국의 법 체제 아래서 기업이 경영권을 유지하고 이어간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다른 나라 언론이 알 턱이 없다.

한국에서는 선대가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을 2,3세가 물려받는 것부터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기업을 상속 받으려면 상속세율이 65%다. 세계 최고다. 할아버지가 100%의 지분을 남겨도 아들은 35%만 넘겨받을 수 있고 손자의 수중에는 고작 10% 안팎이 떨어질 뿐이다. 시쳇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들 대기업 승계자가 되는 게 불가능한 이유다. 상속세를 낼 수 없어 기업을 매각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 등 8개국이 상속세를 폐지했다. 대신 자본이득세라는 것을 도입했다. 물려받는 시점의 자본이득에 대해서만 과세한다. 미국 역시 상속세를 폐지할 예정이다. 이미 물려받은 기업 지분을 매각하지 않는 한 과세를 유보해온 나라다. 아시아에서도 홍콩 싱가포르 등이 상속세를 없앴다. 사회주의 중국에도 상속세는 없다.

상속세는 질투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인간 본성을 부정한다. 자식들을 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재산을 남겨주려는 건 부모의 본성적 의지다. 그게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상속한 재산을 처분하지 않으면 납부할 수 없는 고율의 상속세는 그런 인간 본성을 부정하는 파괴 행위다. 부모를 파산시키고 자식은 백지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평등 논리가 한국의 상속세율인 것이다.

게다가 이중과세다. 부모가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미 소득세를 납부하질 않았는가. 이중과세일 뿐 아니라 ‘사망세’ 성격까지 띠니 부도덕하기까지 하다.

기업 상속이 여의치 않으면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고용 안정이나 협력사와의 관계, 나아가 지역과 국가 경제와의 약속까지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삼성전자가 아무리 고단해도 국내에서 기업을 꾸려간다. ‘기업 이민’이란 건 생각해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엇 같은 헤지펀드가 지분을 매집해 대주주가 됐다 하자. 멋모르는 사람들이 주장해온 이른바 ‘재벌 해체’가 순식간에 이뤄질 것이다. 그 다음은 본거지를 해외로 옮기려 들 것이다. 해외에서 기업의 국경 탈출은 그만큼 흔한 일이 아닌가. 그 여파를 상상이라도 해봤는지 모르겠다.

일반인들에겐 세무서가 나서 절세 가이드를 해준다. 하지만 대기업이 절세를 하면 편법이나 불법으로 몰아붙인다. 그러다 보니 상속 절차 자체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일이 된다. 이런 약점을 지닌 기업이 어디 한두 곳뿐이겠는가.

그 약점을 놓칠 정치인들이 아니다. 앞다퉈 기업을 괴롭힌다. 그뿐인가. ‘금수저’에 대한 국민의 질투를 자극해 자신들의 입지를 다진다. 상속세를 내는 국민은 2%에 불과하다. 이들이 기업의 애로를 알 턱이 없다. 오히려 상속을 부도덕한 행위로 몰아버리려는 사회주의적 사고만 확산돼 다시 정치인들을 압박하는 악순환만 거듭된다.

어디 상속세뿐이랴. 한국 기업의 대주주에게는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장치란 하나도 없다. 다른 나라처럼 차등의결권주, 황금주,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제도를 서둘러 도입하자는 목소리는 허공을 떠돌 뿐이다. 이런데도 정치하는 사람들은 투기자본에 칼자루를 쥐여주겠다는 상법개정안을 휘두르고 있다.

정의롭지 않고 질투로 가득 찬 법으로 가득하다. 기업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고, 무턱대고 구속하고, 수갑을 채우고, 포승으로 묶어서 창피를 준다. 이런 나라에서 왜 기업을 해야 하나. 홍콩이나 싱가포르로 옮기면 안 될까. 세금도 그쪽에 내고, 상장도 나스닥에 하면 어떨까. 악법에 기업과 경제는 시퍼렇게 멍이 들고 있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