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과 2인자 된 황각규 사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과 2인자 된 황각규 사장.
21일 오전 8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황각규 롯데그룹 사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평소 출근길 집 앞에서 반갑게 인사하던 그였지만 이날은 달랐다. 정책본부를 대신해 그룹의 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경영혁신실의 실장으로 공식 선임되는 날이어서인지 긴장한 모습이었다.

황 사장은 ‘중국 관영 언론들이 롯데를 맹비난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경영혁신실 운영 방향을 말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겠느냐. 오늘은 이만하자”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첩첩산중 과제는 정면 돌파

사드 악풍에…황각규, 다시 '자강론' 꺼냈다
기자는 롯데그룹 컨트롤타워를 이끌게 된 황 사장의 생각을 듣기 위해 지난 13일부터 매일 황 사장을 출근길에 만났다. 황 사장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질문엔 즉답을 피했다. 직접적인 답변은 피했지만 그가 되풀이한 말이 있다. “외부 상황이 어떻든간에 우리가 잘하는 게 최선이다.” 지난 20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집 앞에서 기다린 기자에게 황 사장은 “중국으로부터 사드 영향을 받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한국과 중국 정부 간 문제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는 우리대로 최선을 다해 잘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검의 추가 수사 가능성에 대해 물어도 “우리가 잘하는 게 최선”이란 말만 반복했다. 각종 변수에 꿋꿋이 적응해온 롯데식 자강론인 셈이다.

◆“50주년 준비 잘해 새 미래 준비”

황 사장은 대내외 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분간 한 가지 행사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그는 “많은 어려움 속에 서울시로부터 롯데월드타워 공식 사용승인 신청을 받은 만큼 4월3일에 롯데월드타워 공식 개장을 잘하고 그룹 50주년 창립식을 잘 준비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성장 동력 발굴에도 힘을 쏟는다. 황 사장은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인공지능(AI)을 쇼핑에 접목하는 서비스를 국내에서 처음 도입했다”며 “AI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그의 가장 큰 임무는 신동빈 회장이 시작한 개혁을 밀고가는 것이다. 그는 이날 임원들에게 “시대 흐름에 맞게 그룹이 변화할 수 있도록 활력을 불어넣는 경영을 하겠다”고 말했다. 신 회장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그는 “신 회장은 평소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는 분”이라며 “경영 스타일이 신중한 편이어서 참모들의 다양한 의견에 곧바로 대답이나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황 사장은 신 회장을 오랜기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1979년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한 황 사장은 1990년 호남석화로 경영수업을 받으러 온 신 회장을 처음 만났다. 신 회장이 롯데그룹으로 자리를 옮기자 황 사장도 그룹으로 이동해 신 회장과 호흡을 맞췄다. 2004년 우리홈쇼핑(현 롯데홈쇼핑), 2009년 두산주류(롯데주류) 등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공시키며 신 회장의 눈에 들었다. 황 사장은 또 영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새로운 모바일 기기를 먼저 사용해보는 얼리어답터로 알려져 있다.

황 사장이 이끌게 될 경영혁신실은 다음달 1일자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가치경영팀과 재무혁신팀, 커뮤니케이션팀, HR혁신팀까지 4개팀으로 구성된다. 신 회장 직속으로 준법경영과 법무 기능을 담당하는 ‘컴플라이언스위원회’와 ‘사회공헌위원회’가 신설된다. 신 회장이 겸임해온 사회공헌위원장은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사장)이 맡는다. 회장보좌역이라는 직함도 소 사장에게 추가됐다.

새로 생기게 되는 4개 사업부문(BU: business unit) 수장 자리엔 기존 롯데 주력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선임됐다.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이 화학 BU장으로, 이재혁 롯데칠성음료 사장이 식품 BU장으로 이동했다. 유통 BU장과 호텔·기타 BU장은 22~23일 해당 계열사 이사회 이후 공식 발표된다.

배정철/정인설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