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비트코인'…범죄 화폐로 변질된 '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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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은 안 받아요…'문상'으로 주세요"
통장발급 어려운 청소년들 선호
간편 송금·거래 흔적 남지 않아 성매매 등 범죄 대가로 활용
경찰 vs 업계, 용도 제한 갈등
"도서·영화 등으로 사용 제한을"…"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
통장발급 어려운 청소년들 선호
간편 송금·거래 흔적 남지 않아 성매매 등 범죄 대가로 활용
경찰 vs 업계, 용도 제한 갈등
"도서·영화 등으로 사용 제한을"…"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
“문상 2장에 직접 찍은 음란 영상 10개 넘깁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 간 불법 음란물 거래에 관한 게시글이다.
‘문상 2장’은 문화상품권 1만원권 두 장을 뜻한다. 문화상품권이 청소년 사이에서 ‘범죄 화폐’로 악용되고 있다. 다른 상품권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통장 거래와 달리 추적이 어려워 불법 거래에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매매 거래에 쓰이는 문화상품권
이달 초 장제원 바른정당 의원의 아들이 성매매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문제가 된 SNS 게시물에는 ‘성매매 대가는 문상 5장’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성매매를 하거나 음란 영상을 판매하는 청소년 대부분이 현금 대신 문화상품권을 요구한다. 경찰 관계자는 “은행 거래를 하려면 통장이 필요한데 통장 발급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미성년자가 통장을 만들기 쉽지 않다”며 “이에 비해 문화상품권은 액수가 적힌 부분을 긁어서 고유번호를 보내면 송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문구점, 서점 등 청소년이 자주 가는 곳에서 구매할 수 있다.
신세계, 롯데 등이 발행하는 상품권과 비교해 용처도 훨씬 넓다. 온라인몰은 기본이고, 2012년엔 편의점으로도 가맹점이 확대됐다. 유통량이 많아지면서 상품권 거래소에서 ‘깡’도 가능해졌다.
경찰로선 문화상품권이 골칫거리다. 거래 흔적이 남지 않아 불법 거래의 전모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추적이 어려워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신세계, 롯데상품권 등 고액 상품권이 비자금 조성 등에 악용되듯이 문화상품권은 ‘청소년의 비트코인(온라인 가상 화폐)’으로 악용된다는 얘기다.
◆용처 제한 놓고 ‘옥신각신’
1999년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문화상품권도 다른 상품권처럼 시장자율에 맡겨졌다. 1만원권 이상의 상품권을 발행할 때 인지세를 내는 것을 빼면 누구든 제한 없이 발행할 수 있다. 현재 문화상품권류(類)를 발행하는 주요 업체는 한국문화진흥(문화상품권), 해피머니아이엔씨(해피머니상품권), 북앤라이프(도서문화상품권) 등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상품권 불법 유통거래 제한 필요성 관련 조사’ 보고서(2015년 10월)에 따르면 ‘문화상품권 발행액은 연간 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상품권 발행액을 집계하는 부처가 없어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선 경찰관들은 거래 흔적 없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문화상품권이 청소년 범죄를 부추긴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여성청소년과 수사관은 “문화상품권을 현금과 사실상 동일한 것처럼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애초 취지대로 책이나 영화 구입 등에만 쓰일 수 있도록 제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상품권업계 관계자는 “용처를 늘려야 상품권 가치가 올라가고, 발행업체도 가맹점을 늘림으로써 수익을 내는 구조”라며 “문화상품권을 청소년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용처를 제한하자는 얘기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자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문상 2장’은 문화상품권 1만원권 두 장을 뜻한다. 문화상품권이 청소년 사이에서 ‘범죄 화폐’로 악용되고 있다. 다른 상품권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통장 거래와 달리 추적이 어려워 불법 거래에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매매 거래에 쓰이는 문화상품권
이달 초 장제원 바른정당 의원의 아들이 성매매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문제가 된 SNS 게시물에는 ‘성매매 대가는 문상 5장’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성매매를 하거나 음란 영상을 판매하는 청소년 대부분이 현금 대신 문화상품권을 요구한다. 경찰 관계자는 “은행 거래를 하려면 통장이 필요한데 통장 발급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미성년자가 통장을 만들기 쉽지 않다”며 “이에 비해 문화상품권은 액수가 적힌 부분을 긁어서 고유번호를 보내면 송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문구점, 서점 등 청소년이 자주 가는 곳에서 구매할 수 있다.
신세계, 롯데 등이 발행하는 상품권과 비교해 용처도 훨씬 넓다. 온라인몰은 기본이고, 2012년엔 편의점으로도 가맹점이 확대됐다. 유통량이 많아지면서 상품권 거래소에서 ‘깡’도 가능해졌다.
경찰로선 문화상품권이 골칫거리다. 거래 흔적이 남지 않아 불법 거래의 전모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추적이 어려워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신세계, 롯데상품권 등 고액 상품권이 비자금 조성 등에 악용되듯이 문화상품권은 ‘청소년의 비트코인(온라인 가상 화폐)’으로 악용된다는 얘기다.
◆용처 제한 놓고 ‘옥신각신’
1999년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문화상품권도 다른 상품권처럼 시장자율에 맡겨졌다. 1만원권 이상의 상품권을 발행할 때 인지세를 내는 것을 빼면 누구든 제한 없이 발행할 수 있다. 현재 문화상품권류(類)를 발행하는 주요 업체는 한국문화진흥(문화상품권), 해피머니아이엔씨(해피머니상품권), 북앤라이프(도서문화상품권) 등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상품권 불법 유통거래 제한 필요성 관련 조사’ 보고서(2015년 10월)에 따르면 ‘문화상품권 발행액은 연간 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상품권 발행액을 집계하는 부처가 없어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선 경찰관들은 거래 흔적 없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문화상품권이 청소년 범죄를 부추긴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여성청소년과 수사관은 “문화상품권을 현금과 사실상 동일한 것처럼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애초 취지대로 책이나 영화 구입 등에만 쓰일 수 있도록 제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상품권업계 관계자는 “용처를 늘려야 상품권 가치가 올라가고, 발행업체도 가맹점을 늘림으로써 수익을 내는 구조”라며 “문화상품권을 청소년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용처를 제한하자는 얘기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자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