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중국의 꿈'은 '세계의 꿈' 아니다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은 저마다 핵심 목표가 있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사회주의 건설’을 얘기했고,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개방’을 전면에 내세웠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13년 초 취임하면서 ‘중국의 꿈(中國夢)’을 화두로 제시했다.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뜻하는 이 말에는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야심도 숨어 있었다.

이후 중국은 자국의 급부상을 불안해하는 다른 나라들을 의식해 ‘중국의 꿈은 세계의 꿈(中國夢, 世界夢)’이란 그럴듯한 슬로건을 만들어냈다.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세계 모두에 이로울 것이란 의미였다.

작년 7월 한국 정부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을 발표했을 때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기업인들은 “왜 정부가 최대 교역 대상국인 중국을 적으로 만드는 결정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한국 내 여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국민의 30~40%가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중국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본격화하면서부터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한국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방영을 금지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올 것이 왔다’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중국 당국이 사드 배치 부지를 제공하기로 한 롯데그룹의 중국 내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세무조사, 소방안전조사를 벌이자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이참에 중국과 국교를 단절하고 대만과 국교를 정상화하자”, “차라리 일본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자”, “한국에 들어와 있는 조선족 동포도 모두 추방하라” 등의 극단적인 주장들까지 나왔다.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라는 한국의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사드 배치 철회를 이끌어내 보겠다는 노림수가 담겨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올해 치러질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라고 전했다.

한국 내 여론은 그런 중국 정부의 의도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잇단 경제보복 조치로 여론이 악화된 탓에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는 것이 중국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도 ‘사드 배치 반대=민족주권 포기’란 프레임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 못지않게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만과 홍콩에서도 최근 몇 년 새 반중(反中) 감정이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홍콩에서는 2014년 중국의 정치 간섭에 반대하는 ‘우산혁명’이 벌어졌고, 대만에서는 지난해 반중 노선을 표방한 민주진보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중국은 자국의 한 섬 정도로 치부하는 대만과, 영국으로부터 돌려받은 홍콩의 신뢰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이웃인 한국의 기업들에는 사드 배치 결정을 트집 잡아 각종 비관세 장벽을 치거나 차별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반중 감정이 확산되는 한 ‘중국의 꿈’은 어떤 포장지를 씌우더라도 ‘중국의 꿈’일 뿐이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