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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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케미칼이 독자 기술 개발에 잇따라 성공하며 석유화학업계 ‘기술 강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염소화 폴리염화비닐(CPVC)과 ‘꿈의 촉매’로 불리는 하이브리드 메탈로센 촉매가 그 중심에 있다.

한화케미칼은 작년 12월 CPVC 제조 기술(공정 기술)을 국내 최초, 전 세계 다섯 번째로 독자 개발한 데 이어 지난 10월에는 하이브리드 메탈로센 촉매도 자체 개발했다. 최근 이들 기술로 국가기술표준원에서 국내 최고 권위의 신기술인증(NET)을 획득했다.

CPVC는 내년 3월 상업 가동을 목표로 울산에 연간 3만t 규모의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CPVC는 PVC보다 고부가 제품이다. PVC는 범용 제품으로 건축용 파이프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한화케미칼은 국내 최초로 1967년부터 PVC를 생산해 왔다.

하지만 범용 제품인 만큼 장기간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중국이 설비를 대거 늘리면서 언제든 공급 과잉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한화케미칼이 CPVC에 눈을 돌린 배경이다.

CPVC는 열과 압력에 강하고 무게가 가볍다. 또 쇠로 만든 강관은 녹이 슬지만 CPVC는 그런 염려가 없다. 이런 장점 때문에 CPVC는 소방용 스프링클러 배관, 온수용 배관, 산업용 배관 등으로 광범위하게 쓰인다. 가격도 일반 PVC는 t당 110만원가량인 반면 CPVC는 t당 210만원 정도로 두 배 가까이 비싸다. 한화케미칼은 CPVC의 원료인 PVC와 염소를 모두 생산하고 있다. CPVC를 개발하면 수직계열화를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문제는 독자 기술 개발이 어렵다는 점이다. CPVC는 미국 루브리졸, 일본 세키스이, 가네카, 프랑스 켐원 4개사가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 일종의 독과점 시장이다. 한화케미칼은 이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1990년대 중반 두 차례 기술 개발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다 2012년 1월 다시 기술 개발에 나섰다. 10명의 프로젝트팀을 꾸렸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4년 만에 공정 기술을 모두 독자 개발했다. 제품 원천기술뿐 아니라 제조 공정까지 모두 독자 기술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기술 도입료를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에도 유리한 발판을 갖게 됐다.

CPVC 세계 시장은 현재 연간 29만t, 6300억원 규모다. 당분간 연 10%가량 안정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범용 제품의 시장 성장률이 대개 연간 5% 안팎인 점에 비춰보면 꽤 유망한 시장이다. 한화케미칼은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도 적극 공략할 예정이다. 국내 시장은 작년 기준으로 연 1만1000t 규모이며 2020년에는 1만6000t으로 커질 전망이다. 해외에선 인도와 중동을 유망 시장으로 눈여겨보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CPVC 기술 개발 초기 단계부터 연구원(한화케미칼 중앙연구소) 외에 시장 조사 담당(본사 사업팀)과 공장 설계 전문가를 팀에 합류시켰다. 자체 개발한 기술에 맞는 최적의 공장을 짓고 곧바로 판로까지 개척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 덕분에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상당 부분 해외 판로를 개척해 놨다.

기존 PVC 공장에 이번에 개발한 기술을 적용해 범용 PVC의 품질을 높이는 작업도 시험하고 있다. 중국 닝보 PVC 공장에서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CPVC 기술 독자 개발로 고가의 원료 수입을 대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도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당면 과제는 범용 제품을 고부가화하는 체질 개선”이라며 “CPVC는 이런 체질 개선의 모범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이브리드 메탈로센 촉매는 차세대 촉매다. 2종 이상의 촉매를 함께 적용하는 하이브리드 기술을 통해 강도와 가공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게 특징이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50년 이상 고온과 고압을 이겨낼 수 있는 강도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기술 개발은 2013년 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3년여가 걸렸다.

한화케미칼 측은 “촉매는 화학 반응의 속도를 변화시키는 물질로 연구 역량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왔을 때만 개발이 가능하다”며 “특히 이번에 개발한 촉매는 고부가 제품에 주로 사용하는 차세대 촉매”라고 설명했다.

한화케미칼은 향후에도 원천기술 연구에 주력할 방침이다. 올초 KAIST와 공동으로 미래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차세대 석유화학 물질 제조기술, 혁신적 에너지 저감이 가능한 고순도 정제 공정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